LP-최안순
1. 흰구름
2. 사랑하고 싶은데
3. 산까치야
4. 바람개비
5. 사랑의 집
6. 엄마별 아빠별
1. 안개 낀 터미날
2. 그림자 하나
3. 선생님
4. 나의 인형
5. 종이배 만들어
6. 목련꽃
70년대를 풍미했던 혼성 듀엣 라나에로스포 출신 최안순의 히트작
70년대 포크 1세대 인기가수 최안순의 히트곡이 총망라된 베스트앨범이다.
혼성 듀엣 라나에로스포 활동을 중단하고 솔로 가수로 독립한 그녀는 오아시스레코드로 전속사를 옮겨 <산까지야>를 히트시키며 음악 인생에 전기를 마련했다. 46년 만에 LP 포맷으로 다시 발매된 이 음반은 활동 범위가 학생층으로 제한적이었던 포크가수 활동에서 벗어나 폭넓은 대중에게 사랑받는 인기가수로 성장했던 최안순의 최전성기를 증명하는 히트작이다.
최안순의 데뷔 시절
70년대를 풍미했던 인기 가수였지만 활동을 중단한지 오래된 최안순의 이름을 기억하는 대중은 중장년층으로 국한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안순 LP의 재발매는 대중의 기억에서 삭제된 70년대를 풍미했던 중요 가수의 소환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1949년 8월 28일 서울에 태어난 최안순은 남대문 초등학생 때 서라벌예대 음대교수에게 레슨을 받으며 탄탄한 음악 기본기를 닦았다. 성신 여중고 재학 시절엔 합창단 활동을 하며 음악 내공을 쌓았던 그녀는 대학 입시 실패 후 진로 문제로 고민했다.
그때 뮤지컬 악단인 청포도 가무단의 단원 모집 광고를 보고 오디션에 참가했다.
우연하게도 초등학교 시절 자신에게 동요 레슨을 사사했던 은사인 권형집 교수가 오디션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었다.
반갑게 조우한 스승과 제자는 다시 뮤지컬 무대로 음악 인연을 이어갔다. 청포도 악단은 재정난으로 인해 1년 후에 해산했다.
이때 악단에서 기타 연주를 익혔던 최안순은 악단의 총무 장상덕의 소개로 여성 멤버의 공백으로 고심 중이던 혼성 듀엣 라나에로스포(개구리와 두꺼비)의 리더 한민을 만났다. 라나에로스포의 3대 여성 멤버가 된 그녀는 2집 녹음에 참여해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최안순은 <사랑해>의 빅 히트로 인해 1대 여성 멤버 은희와 원곡 가수 논란을 빚으며 화제를 모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6개월 만에 그룹 활동을 접고 솔로 가수로 독립했다.
70년대를 풍미했던 인기가수
최안순은 1971년 작곡가 김인배가 기획한 캐럴과 포크 음반 2장을 대도 레코드에서 발표했지만 판매 성적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에 ‘모깃소리’로 불렸던 가냘픈 음색을 지닌 그녀의 솔로 가수 활동에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지만 포크가수로는 어느 정도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혼성 듀엣 시절 최안순의 모습은 연예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긴 생머리에 굵은 뿔테안경을 착용한 순수한 이미지는 포크가수의 전형이었다. 솔로 가수로 독립한 후 그녀는 과감하게 안경을 벗고 청순미 넘치는 외모와 맑은 음색의 노래로 주목받았다.
1972년 오아시스레코드로 전속을 옮겨 인기가수로 성장할 계기를 마련했다. 메이저 음반사에 전속되어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최안순은 1972년부터 1974년까지 3년 동안 자신의 음악 여정에서 가장 많은 앨범을 발표하며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비록 그녀의 앨범들은 수록곡이 중복되고 커버 사진만 교체되어 발매된 중복 버전이 많은데 그만큼 인기가 많았다는 증거이다. 가냘픈 몸매와 여성미 넘치는 참한 외모와 무엇보다 박인희에 필적하는 아름다운 음색을 지녔던 최안순은 70년대를 풍미했다.
최안순의 대표곡 <산까치야>
47년 만에 재발매된 최안순의 이번 독집은 1972년에 처음 발표되었지만 순수한 이미지를 깨는 화장을 한 최안순의 화려한 사진으로 커버가 교체된 1973년 재발매 버전이다. 10곡이 수록된 초반과는 달리 이 앨범은 <흰 구름>과 <사랑하고 싶은데> 2곡이 추가되어 있다. 초반과 재반 모두 이제는 희귀 고가 음반으로 대접받는다. <엄마별 아빠별>, <선생님>, <종이배 만들어>, <안개 낀 터미널>, <목련 꽃> 등 수록곡들은 전반적으로 가냘프면서 슬픔을 머금은 음색으로 부른 편안한 노래들로 구성되어 있다.
최대 히트곡은 정주희 작사 작곡의 <산까치야>이다.
맑은 목소리와 동심을 자극하는 순박한 가사가 담긴 이 노래는 발매 5개월이 지나면서 예상을 뛰어넘는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산까치야>는 1972년 처음 발표 당시에는 제목이 <산까치>였지만 가사의 첫 소절이 회자되면서 자연스럽게 제목이 바뀌었다. 처음으로 가요 차트 정상에 오른 이 노래의 히트로 인해 최안순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산까치야>는 최안순의 음악 여정에서 도약의 전기를 마련해 준 첫 솔로 히트곡이자 대표곡이 되었다.
사실 이 노래는 처음부터 그녀를 위해 준비된 곡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인기가 많았던 정훈희와 남성 듀오 에보니스가 그녀보다 유력한 후보자였다. 최안순은 <산까치야>를 취입할 기대조차 못한 처지였지만, 신선한 보컬 매력을 높이 평가했던 오아시스레코드는 그녀를 최종 선택했다.
최안순은 1975년 오아시스레코드의 경쟁사인 지구 레코드로 스카우트되었을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1976년까지 앨범과 공연, 방송 활동을 왕성하게 펼쳤던 그녀는 결혼과 함께 가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CCM 가수로 거듭나며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한국 대중가요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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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음반의 튀는 현상은 음반 불량이 아닌 톤암과 침압의 무게 중심이 맞지 않아 생기는 현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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