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이정화: 봄비
신중현(작곡집)과 덩키스:
이정화(vocal), 신중현(guitar), 오덕기(guitar), 이태현(bass), 김호식(drum), 김민랑(organ)
1. 봄비
2. 꽃잎
3. 내일
1. 마음
2. 먼길
환영받지 못했던 신중현의 초기 창작 활동
비틀즈의 영향력이 강력했던 1964년은 한국 록 음악 역사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해이다. 가장 먼저 정규 앨범을 발표한 키보이스에 이어 신중현이 주도한 에드포의 앨범이 연속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비틀즈’를 표방했던 키보이스에 비해 에드포의 음악에 대한 당대 대중의 반응은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비틀즈의 히트곡을 커버했던 키보이스와는 달리 에드포의 첫 앨범은 창작곡으로 승부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것보다 선진국의 문화와 문물을 선호하는 사대주의가 팽배했던 사회분위기가 빚어낸 결과일 수도 있다.
1966년에 생계를 위해 미군클럽 무대로 돌아간 신중현은 5인조 밴드 블루즈테트를 결성해 패키지 쇼 활동과 더불어 급조된 밴드 조우커스, 액션스 등을 통해 일반무대 활동을 병행했다. 창작곡으로 대중과의 소통을 갈망했던 신중현은 당대의 히트곡과 흘러간 옛 노래들을 연주한 경음악 음반(당시 연주음반을 그렇게 호칭했다) 발표에 머무는 소모적 음악활동을 강요당했다.
활동 동력이 식어가던 신중현은 AFKN(주한미군방송)에 출연하면서 싸이키델릭 기법의 독특한 촬영과 화면 처리에 매료되며 장르에 빠져들었다. 둘째아들 신윤철이 가족여행 때 멀리 농가에서 들려오는 돼지 울음소리에 “지미 핸드릭스 기타연주 소리가 난다”는 말은 당시 신중현이 얼마나 싸이키델릭 사운드에 경도되었는지를 알려준다.
펄 씨스터스의 성공이 안겨준 대반전
새롭게 빠져든 싸이키델릭 음악에 한국적 이미지를 접목하는 실험을 시도하기 위해 신중현은 밴드 덩키스를 결성했다. 밴드 이름은 그의 음악스승 이교숙이 ‘당나귀처럼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가라.’는 의미로 작명해 주었다.
1968년 미8군 클럽 넉아웃 쇼단의 하우스밴드로 활동할 당시 덩키스의 멤버는 리드기타 신중현, 베이스 기타 이태현, 드럼 김호식, 키보드 김민랑, 리듬기타 오덕기로 구성한 5인조 라인업이었다. 새로운 음악을 시도하고 싶은 신중현의 음악적 야심은 뜨거웠지만 베트남으로 떠나는 쇼단 참여를 심각하게 생각했을 만큼 당시 그의 활동 영역은 협소했다.
덩키스 멤버들과 함께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참여했던 펄 씨스터즈 데뷔 앨범이 예상치 못한 대박흥행을 기록하면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인지도가 높아진 신중현은 1969년 5월 김응천 감독이 연출한 음악영화「푸른사과」에서 처음으로 영화음악감독을 맡으면서 활동 영역을 차츰 넓혀 나갔다.
객원 보컬로 영입한 넉아웃 쇼단의 이정화
신중현은 최대 관심사인 싸이키델릭 사운드를 펼쳐내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창작 작업에 몰두하면서 미8군 클럽 넉아웃 쇼 단원이었던 22세의 부산출신 신인 여가수 이정화를 밴드의 객원보컬로 영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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