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김추자: 드렉스 앨범
1. 그대는 바보
2. 굳나잇 베이비
3. 봄비
4. 마음
5. 꽃잎
1. 소문났네
2. 올드 미쓰
3. 계절탄 사랑
4. 무뚝뚝한 사람
5. 수양딸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한국인은 즐거우면 예로부터 노래와 더불어 춤을 덩실덩실 추는 흥부자 민족이다.
60년대가 트위스트의 시대라면 70년대는 고고 열풍지대였다. 80년대에는 디스코 열풍이 강타했다.
이처럼 시대마다 유행했던 다양한 춤들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탁월한 춤과 노래실력을 겸비한 댄스가수들에 의해 전파되어왔다.
뛰어난 가창력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추자는 화려한 의상과 춤을 동반한 독보적인 무대로 가요계의 체질을 변화시켰다.
당시로서는 흔치 않았던 여성댄스가수였던 김추자는 다양한 사건 사고로 대중의 흥미를 자극했던 이슈 메이커이기도 했다. 드러내길 꺼렸던 정적인 당시 사회는 그녀의 등장으로 일순간에 후끈 달아올랐다.
열정적인 무대는 파격 그 자체였다.
1970년대 초의 남성들은 터질 것 같은 몸매를 여과 없이 드러낸 꽉 조이는 의상과 현란하고 매혹적인 김추자의 춤사위에 정신을 빼앗겨 몽롱했다.
김추자 이전에도 여성댄스가수는 존재했다.
1950년대 말 미8군 무대에는 미스K(혹은 먼로K)라는 여성 댄스가수가 있었다. 그녀는 무대 위에 드러누워 춤을 추고 노래하는 파격적인 무대매너로 미군들의 넋을 빼놓았다는 전설적인 여성 댄스가수이다.
하지만 일반무대 진출 전에 미군 장교와 결혼한 후 은퇴를 해버려 일반대중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가수로 남았다.
공식적으로 최초의 댄스가수로 각인된 이금희는 허스키보컬에 화끈한 율동을 곁들인 무대로 부동자세로 노래하던 가요계에 지각변동을 몰고 왔다.
이후 여성댄스가수의 계보는 신중현사단인 펄시스터즈에 이어 등장한 김추자로 이어졌다.
김추자는 독창적인 춤과 더불어 가창력까지 독보적이었다. 노래마다 콘셉트를 달리하는 파격적인 의상과 안무를 선보인 그녀는 지금의 여성댄스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섹시했다.
김추자의 환상적인 무대를 기억하는 중장년의 남성들은 지금도 '잠자던 돌부처도 불러 세웠다'는 그녀를 대중가요역사상 가장 섹시한 여가수로 기억한다. 온 국민의 눈과 귀를 자신에게 고정시킨 여가수는 당시로서는 유래가 없었다.
1970년 MBC 10대가수상 시상식에서 김추자가 여자 신인 가수상을 수상했다.
이후 ‘김추자=신중현’이란 등식이 성립되었지만 사실 그녀는 신중현 외에도 김부해, 김희갑, 전우중, 라화랑, 김강섭, 안길웅 같은 당대 최고 작곡가들과 트로트, 민요, 가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주체하기 힘든 끼와 재능을 과시했다.
1969년 데뷔이후 1971년까지 2년 간 열정적인 노래와 춤으로 인해 ‘다이나마이트’란 별명을 획득한 김추자는 무려 10여장의 음반을 발표하는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각 신문방송에서 수여하는 가수상에 그녀의 이름을 발견하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스케줄 펑크와 잠적 사고가 빈번했던 그녀의 예측 불가능한 활동으로 인해 '구름 같은 김추자'로 불리는 부정적 시각도 공존했다.
1971년 1월, 김추자는 강대철 감독의 국책영화 ‘내일의 팔도강산 3편’에 당대의 인기가수 패티김, 이미자, 나훈아, 봉봉사중창단, 펄시스터즈와 함께 특별 출연했다. 이 영화는 깜직한 외모로 춤추며 노래하는 데뷔초기 김추자의 모습을 칼라영상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영화이다.
당대 대중에게 김추자를 매력적인 댄스가수로 각인시킨 영화인 셈이다.
같은 해에 발표했던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는 남녀노소를 초월해 좋아했던 댄스곡이다.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 이 노래를 부를 때 선보였던 김추자의 독특한 손짓은 ‘북한과의 암호송신’이라는 황당한 소문까지 나돌았을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킹레코드의 사장인 킹박에게 김추자는 비교 대상이 없는 원 톱 가수였다.
그가 제작한 각종 컴필레이션 앨범의 커버 모델을 김추자가 독식한 것은 막강했던 그녀의 브렌드 파워를 증명한다.
1971년 10월 25일에 ‘김추자 드렉스 앨범’이란 타이틀로 발매된 이 앨범은 김추자의 춤추는 모습이 담긴 여러 앨범 중에서도 군계일학이다. 춤추는 김추자의 귀여운 사진들을 배열한 과감한 편집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 그로 인해 이 음반은 이듬해인 1972년에 재발매까지 되었다.
수록곡 10곡 중 번안곡 <굳나잇 베이비>와 안길웅 곡 <무뚝뚝한 사람>을 제외한 8곡이 신중현의 창작곡이다. 연주는 신중현밴드 퀘션스가 담당했다.
<그대는 바보>는 커버 이미지에 걸맞게 흥겨운 비트와 리듬으로 앨범의 문을 연다.
이 곡은 퀘션스의 객원가수 송만수와 임성훈이 1970년에 먼저 발표했지만 김추자로 인해 히트되었다. <굳나잇 베이비>는 이 앨범보다 한 달, <봄비>, <마음>, <꽃잎>은 1969년 덩키스의 여성보컬 이정화가 먼저 불렀다. 김추자의 <봄비>, <꽃잎>은 1970년 드라마 마부 컴필레이션 음반에 먼저 수록되어 널리 알려졌다. <마음>은 이 앨범에 처음 실렸다.
B면을 경쾌한 분위기로 이끄는 첫 곡 <소문났네>와 비트감이 귀에 간지럽히는 <올드 미쓰>, 분위기를 이어주는 <계절탄 사랑>은 이 음반을 통해 처음 발표되었던 신곡들이다.
<무뚝뚝한 사람>과 <수양딸>은 이 음반보다 한 달 먼저 발표되었지만 잘 알려진 곡들은 아니다. 이 앨범은 김추자의 독집이지만 신곡이 3곡에 불과하고 대부분 이미 발표한 노래들을 재수록한 점에서 음악적인 완성도가 높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댄스가수 김추자의 이미지에 포커스를 맞춘 파격적인 커버 디자인과 비트 있는 일부 노래들을 당대 대중의 흥미를 유발시키며 상업적 성공을 이끌어낸 기획력은 신선했다. -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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