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이문세: Golden Best 14
1.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
2. 그게 나였어
3. 해바라기
4. 다시 만나리
5. 시를 위한 시
6. 광화문 연가
7. 슬픈 미소
1.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2. 붉은 노을
3. 내 오랜 그녀
4. 할 말을 하지 못했죠
5. 그대
6. 가을이 오면
7. 안개꽃 추억으로
전성기 노래들로 꾸며진 베스트앨범.
1990년 발매된 이문세의 베스트앨범은 그의 80년대 전성기를 수놓은 노래들로 꾸며진 성찬 같은 음반이다. 데뷔시절 그는 가수보다는 방송의 이야기꾼 이미지가 강해 방송 DJ나 진행자로서의 명성이 높았다. ‘별밤지기’, ‘일밤지기’로 불렸던 그는 실제로 '노래 잘하는 방송DJ'로 더욱 유명세를 날렸다. 노래에만 전념하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다방면으로 재능이 출중했던 만능 엔터테이너였던 까닭이었다.
데뷔 40년을 앞둔 그는 포크, 발라드, 퓨전 등 다양한 음악 실험과 더불어 수많은 히트곡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현재 진행형 가수로 존재감을 지니고 있다. 그의 특별함은 꾸미지 않는 자연스런 이미지와 친구 같은 편안한 분위기에 있다. 시대에 맞게 변신을 거듭한 엔터테이너적 감성은 지금도 대중이 선호하는 라이브 가수로 사랑 받는 원동력이 되었다.
입담 좋고 노래까지 잘 부르는 재능.
1977년부터 다운타운에서 무명가수 생활을 시작했던 이문세는 CBS 기독교방송의 라디오 프로그램 '세븐틴'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입담 좋고 노래까지 잘 부르는 재능을 인정받은 그는 곧바로 고정 출연자로 기용되었고 선배가수 양희은의 뒤를 이어 프로그램의 DJ로 전격 기용되었다.
가수가 아닌 방송인으로 본격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81년 KBS TV '달려라 중계차'의 리포터, KBS 2라디오 '밤을 잊은 그대에게'DJ(81-83년), KBS2FM'젊은이의 노래'(83년)를 거쳤다. 이 기간 중 그는 1982년 데뷔 음반 '떠돌이 인생도 하늘은 있다'를 발표했지만 가수보다 DJ 겸 MC로 더 알려졌다.
1983년 당시 최고의 인기 방송프로그램이었던 KBS2TV '젊음의 행진'의 더블 MC 왕영은, 송승환에 대항하기 위해 이문세는 파격적으로 MBC TV가 신설한 '영11'의 진행자로 스카우트되었다. KBS의 모든 프로그램에서 활동하면서도 MBC로 둥지를 옮긴 이유는 성인 프로로 진출을 하기 위해서였다. 방송인으로 유명해졌지만 그는 가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작곡가 이영훈과 함께 빚어낸 주옥같은 노래들.
1990년 발매된 이문세의 베스트 앨범에는 킹레코드에서 발매된 1집부터 6집까지 발표된 노래 중에서 총 14곡이 선곡되었다. 모든 히트곡이 망라되지는 않았지만 모든 수록곡은 이문세의 빛나는 80년대 전성기에 작곡가 이영훈과 콤비를 이뤄 발표했던 주옥같은 노래들이다.
1집에서는 2집에도 연속 수록된 <그대>, 3집에서는 <할 말을 하지 못했죠>, 4집에서는 <가을이 오면>,<슬픈 미소>, 5집에서는 <시를 위한 시>, <광화문연가>, <붉은 노을>, <가로수 그늘아래 서면>, <안개꽃 추억으로>, <내 오랜 그녀>, 6집에서는 <해바라기>, <이 세상 살아가다보면>, <그게 나였어>, <다시 만나리>가 선곡되었다.
1982년 첫 독집에서 처음 발표된 <그대>는 킹레코드 발매 1집에서 <파랑새>와 교체되어 연속 수록되었던 곡이다. 1983년 킹레코드 발매 1집에서 발표한 <나는 행복한 사람>은 가수로서는 처음으로 동시대 대중과 관계자들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던 출세곡이라 할 수 있다.
1984년 신중현의 참여로 The Best앨범을 발표했던 이문세는 차기 앨범의 신곡을 부탁하기 위해 신촌블루스의 엄인호 사무실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엄인호의 음악 중매로 필생의 음악동지를 만나게 된다. 이문세와 명콤비를 이루며 대중가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던 작곡가 고 이영훈이다. 가수로서 도약할 결정적 순간이었다. 이후 의기투합했던 두 사람은 1980년대 한국대중음악계를 좌지우지할 황금콤비로 떠오르게 된다.
1985년 4월부터 MBC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의 진행을 맡았다. 그는 1996년 12월까지 11년 8개월간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최장수 기록을 세우며 ‘별밤지기’란 별명을 얻어냈다. 그에겐 작곡가 이영훈과의 만남에 필적할 중요한 순간이다. 이 시절 하루 1백 통이 넘는 여학생들의 팬레터가 집으로 쇄도할 만큼 인기가 높았던 그는 1985년 MBC 라디오 부문 연기 대상의 영예까지 안았다.
그 해 발표한 명콤비 이영훈과의 첫 작품인 3집에서 이 앨범에는 선곡되지 않은 히트곡 <난 아직 모르잖아요>는 입담꾼 이문세가 인기가수로 떠오르는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다. 3집은 무려 150만장이 팔려나가는 대박을 터트리며 그해 골든 디스크상까지 수상했다. 호사다마일까. 이문세는 그 해 강릉으로 내려가는 도중 대형 교통사고로 턱뼈를 다쳐 두 번의 수술을 해야 하는 불행을 겪었다. 가수 생명이 끝날 수도 있었던 고통을 그는 이겨냈다.
3집의 빅 히트로 명반으로 각인될 4집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증폭되었다. 1987년 2월 신촌블루스의 세션으로 63빌딩에서 신곡 <사랑이 지나가면>을 발표했던 그의 콘서트는 눈물겨운 재기의 무대였다. 역시 이문세였다.
아쉽게도 이 앨범에는 선곡되지 않은 <사랑이 지나가면>은 KBS 2TV '가요 톱10' 5주 연속 1위로 골든 컵을 수상하고 다운타운 가요 뮤직 박스 차트에서 연 13주간 1위를 차지하는 빅 히트를 터트렸다. 또한 <그녀의 웃음소리뿐> 등 한 음반에서 무려 5곡이 동반 히트를 기록했다. 히트 보증 수표로 떠오른 그는 당시 킹레코드와 3억원이라는 당시 국내 최고의 전속금 계약으로 부러움을 샀다.
인기가 치솟자 말썽도 동반했다. 1988년 말, 작곡가 원철희가 데뷔 이전인 1980년 3월에 녹음했던 이른바 '이문세 마이너스 집'의 뒤늦은 발매를 시도해 신경전이 벌이지기도 했다.
3집과 4집의 연속 히트 퍼레이드로 명곡 <시를 위한 시>, <광화문연가>, <가로수 그늘아래 서면> 등 명곡의 향연을 펼친 5집은 선주문만 수 십 만장에 달했다. 이에 킹레코드는 당시 3,300원이던 음반 값을 일방적으로 4,000원으로 인상해 소매상들의 불매 운동이 펼쳐졌다. 소용없었다.
대중은 음반의 가격보다는 음반의 퀄리티를 중시했고 그 결과는 258만장의 판매고로 이어졌다. 당시까지의 최다음반판매량을 경신한 신기록이었다. 1989년 발표한 6집에서는 일부 곡에 계몽적 메시지를 담는 시도했지만 전작을 능가하는 히트를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앨범에 수록된 <해바라기>, <이 세상 살아가다보면> 등이 비교적 널리 알려졌다.
이문세는 1986년부터 1988년까지 3년 연속 골든디스크상 수상에 이어 1988년과 1989년 연속해 MBC 10대가수상까지 거머쥐며 정상의 인기가수로 떠올랐다. 작곡가 이영훈은 모든 가수로부터 곡을 받고 싶은 1순위 최고작곡가로 각광받았다.
대중가요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온 이문세의 팝 발라드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지만 이문세는 화려한 TV나 밤무대보다는 소박하게 라디오 DJ와 콘서트 그리고 음반 발표 위주로 활동을 했다. 하지만 이문세와 이영훈이 합작했던 팝 발라드는 대중가요에 대한 대중의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우리 대중가요도 외국 팝송에 뒤질 것이 없다’는 인식은 그때까지 라디오를 점령한 팝송프로그램들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가요 프로그램의 양산을 몰고 오는 혁명적 전환점을 제공했다. ‘이문세 골든베스트 14’를 발매한 1990년 당시, 이문세는 1억 3,000만 원이라는 국내 최고의 모델료를 받고 서울우유의 '요델리' CF모델로 나섰다.
당시 이문세는 얼굴이 길다는 이유로 이수만, 유열과 함께 '마삼 트리오'로 불리며 함께 공동무대를 꾸며 더욱 대중과 친숙해 졌다. 이 앨범 한 장에는 이문세의 80년대를 수놓은 모든 히트곡은 아니지만 전성기를 증언하는 주옥같은 노래들이 선물처럼 가득 담겨 있다. -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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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컬러 음반은 제작 공정상 색상의 차이나, 얼룩이 있을 수 있습니다.
2. 재생에 지장이 없는 미세한 스크레치가 있을 수 있읍니다.
3. 음반의 튀는 현상은 음반 불량이 아닌 톤암과 침압의 무게 중심이 맞지 않아 생기는 현상입니다.
4. 조절 기능이 있는 턴테이블을 사용하거나 무게 중심을 바늘 쪽으로 조정함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