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제1편에서 박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미쳐 다 쓰지못한 또다른 남겨진 이야기 입니다.*
*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경성의전 [ 해방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지금의 서울대 의대) 에 흡수된 후
서울대 의대 전문부로 편입됐음.] 에 응시 하면서
“이 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면, 돈이 없어 평생을 의사 얼굴 한번 못보고 죽어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의사가 되겠다.”
다행히 중간 정도의 성적으로 경성의전에 합격해서, 수석으로 졸업하게 됩니다.
먼 지역서 온 사람을 계속 병원장으로 둘수가 없다며 병원 이사회에서 병원장 자리를 그만두게 한후
그 지역 의사를 병원장 자리에 앉혔지만, 보통의 의사들 같으면 그 병원을
뛰쳐나왔을 텐데도 병원장 자리가 뭐 그리 중요하냐면서 평의사로 그 병원서 계속 일했던 사람
*한국전쟁이 터져 당시 군병원에서 일하던 그는 차남만을 데리고 앰블런스를 타고
남하 하면서 차창밖에 아내와 딸이 짐을 이고 피난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긴급 환자가
타고있는 차를 세울 수 없다며 곧 가족과 만날거라는 희망으로 부산에 도착하게 됩니다.
부산대학교 의과대학에 외과를 설립해 당시 모든 외과의사들이
간을 잘라내면 과다출혈로 죽는다는 두려움에 그 누구도 실행하지 않았지만
한국인 의사 최초로 ”간 절제수술“ 에 성공합니다.
*거창의 한 농부가 복음병원에서 완쾌는 됐지만 돈이 없어 퇴원을 못하고 있으면서
빨리가서 농사를 지어야 한다며 탄식하는걸 알고 밤늦게 병원직원들 모르게 뒷문을 열어줬던 병원장
*병원 주변 시설물을 공사하는 사람에게, 담장벽은 절대 높게하지 말라고 했던 병원장
(담장을 공사하던 사람이 의아해서 물었을 때...
” 담장이 높으면 가난한 환자들이 도망을 못간다...“
*수술 잘못으로 한 환자의 신경을 손상해서 전신마비가 되었을 때
보퉁 의사들 같으면, 이 환자분의 체격이나 신체구조상 수술 때 신경손상이 올 확률이 컸다며
자신의 수술 실수를 합리화 했을텐데도 평생을 누워서만 살아야 하는 그 환자를 생각하며 괴로워 하면서
그 환자의 전세집을 얻어주고 40여년 동안을 자신의 월급을 털어서
그 환자에게 매달 생활비를 보내줬던 병원장
*스승인 ”백인제 (인제대학교 와, 부산 백병원 설립자) 박사가 알선해준
그 당시의 모든 의사들이 꿈꿔왔던 선망의 자리인 “경성의전 교수직” 과
"대전도립병원 외과과장" 자리를 정중히 거절한채
청진기만 대면 병이 낫는줄 알고
“가슴에 청진기를 한번만 대달라”고 애원하는 한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서
박사님은 자신이 생각해왔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병원의 길로 향하게 됩니다.
* 작가 춘원 이광수 가..“ 당신은 바보, 아니면 성자 ”
* 남들 모르게 돌봐오던 한 환자를 찾아가 건넨 말....
“이번 크리스마스 에는 자네에게 다시 못올 것 같아서 미리왔네.”
그리고서 1995년 12월 25일
박사님은 84세로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생을 마감합니다.
*성산. 장기려 박사님 (추가 정보수집,편집,작성: 박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