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사기

똥별

by 조정래 posted Nov 1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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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날 오후에  적근산 하늘이 우중충 해지더니 결국 새벽 2시가 넘어서자 외곽 경비 초소에도 함박눈이 내렸다.

말이 경비초소이지  그냥 산밑에  땅굴을 파고  그 당시는 비닐 조각도 귀하던 시절이라서 초소 입구는 싸리나무 틀에  헌가마니를  걸쳐 놓아서 한겨울   칼바람을 겨우 막아주는 정도였다.

한시간마다 교대를 하는 야간 보초였는데 워낙 추운 전방지대라서 한시간 보초를 서고 나면 발이 얼얼했고 볼떼기는 얼어서 육성 암호교대도 입이 얼어서 생략하고   캄캄한 초소 쪽으로   걸어오는 자태만 보고  같은 부대원으로 인지했다.

막사 쪽으로 걸어오면서도 하늘에서  함박눈이 내리면 저의기 걱정이였다.

 

왜야하면 새로 온 사단장 놈이 퍽하면 사병들을 사단 영창에 가두는 바람에 ,,,사단장 차만 봐도 사병들이 인사는 커녕 숲으로 숨기 바빴다.

지난주도 위병소에 전남 여수에서 오일병 모친이 그 먼길을 달려와 면회를 왔었는데..마침 사단장 차가 통신대로 들어오니 위병서던 쫄병이 지례 겁을 먹고 

 

"아주머니  고개 숙이시던지 앉으세요,,사단장 차 옵니다." 

 

 혹여 무슨 지적으로 영창 갈까 두려워 다급하게 소리치자 ..아들이 위병소로 나오기를 기다리시던 모친이 위병소 바닥으로 납짝 엎드리자 누군가 숨는 모습을 감지한 사단장 차가 위병소에 도착하고

 

"방금 인사 안하고  고개 숙인 사람 누구냐?"

 

사단장 차에 탄 보좌관이 사단장 명령으로 위병에게 물었고...그날 오후에 헌병대 차가 와서 그날 위병 근무자를 

 

"워카 끈 풀어 이 새끼야!"

 

하더니  들어가기만 하면 3-4일 똥도 나오지 안는다는 그 악명 높은 사단 헌병대 영창으로 보냈다.

 

2.

 

또 있다.

두달 전에는 우물파던 사병들이 사단장 차가 뜨자 하급히 우물 구덩이 안으로 전부 숨었다가 한명도 아니고 그날 작업자 5명 전부 사단 영창에 끌려가서 밤새도록 영창 창살에 까꾸로 매달려 끙끙 거리면서 발바닥을 얻어 맞았는데..그때 고통으로 인간 입에서도 고통이 심하면

 

"동물 소리가  난다"

 

는 것을 알았다.

 

3. 

 

사단장놈이 스케이트를 좋아하는 바람에 ..곡운구곡 그 아름다운 강변에 물을 막고 영하 20도가 가까운 날에도 우리소대는 그 강변 스케이트 장에서 좋은 얼음상태를 유지 하려고 애를 먹었는데...날이 매우 추우면 전날 빙질을 좋게 하기 위하여 물을 새로 더 채웠는데 얼음도 혹한 칼바람에 얼면서  표면이  우들투들 해져 버렸고 ... 하필이면 연대장 부인이 얼음 깨진 곳에 발이 빠지는 바람에 이래 저래

빙질 관리 잘 못한 죄목으로  방한복도 없이 덜덜 떨면서 일하던 쫄병  전원 사단 영창을 가서 엄청 뚜둘겨 맞았다.

 

그날 영창 들어가는 날은 간수병이 워낙 악독한 놈이라서 ...

영창 복도에서 각종 채벌로인하여 기절을 해야만 영창 문 안으로 들어 갈 수 있는 특혜? 를 주었는데  같이 간   답십리 박일병도 기절하고  부산 문병장님도  기절을 하고 나서 영창 문 안으로 들어 갔는데,,,나는 기절 하고싶어도 기절이  안되어서 그중 가장 많이 후둘겨 맞았다.

 

영창서 기절을 하면 ...찬물을 한바가지 부었고 그러면 흰 눈동자가 다시 돌아 왔었다.

 

4.

 

전방에서 근무하다가 후방기 훈련으로 차출되어서 호수가 아름다운 큰 도시에 있던 부대에서  미제 엔트락 3  신 통신 기기 운영교육을 받는데  내 옆자리에 최전방서 근무했다는사병이 왔는데..쫄병이 아니고 병장이다.

그는 일체 말이 없었다.

나중에  알콜 더 타서 뻥튀기식으로 만든 전방 부대  막걸리 한잔하면서 그 병장님 이야기 들어보니 기가 막혔다.

연대장 집에서 빨래 병으로 근무했는데..세상에 그 연대장 마누라가 생리 빨래도 시켰다는 것이다.

생리 빨래는 차가운 물로 빨래가 안되므로 연탄 불에 물을 끓려서 해도 빨래가 깨끗하게 되지 않아서 꾸중을 듣고나니 순간 화가나서 

욕을 했다가 ....부끄러움도 모르는 연대장 놈이

 

"너 영창 갈래 어님 다른 부대로 갈래~:

 

하여 우리 부대로 오게 된 사연이다.

생리 빨래는 자고로 부끄러움이 있는 물건이라서 시골에서도 우물 가에서는 빨래를 하지 못하고 동네 한쪽 귀퉁이에 있는 논 웅덩이 같은 곳에서 아녀자들이 모여서 빨래를 했는데..그것을  서답 빨래라고 했었다.

그런 서답 빨래를 젊은 남자 쫄병에게 맡기다니!

 

지금 그런 일이 일어 났다면 해외 토픽 감이다.

 

5. 

내 불알 친구 중에 ...땅부자 집 친구가 있었다.

땅이 많으니 새끼머슴.중머슴.상머슴 머슴이 무려 3명이나 있었던 부자집인데..내 친구는 3년 내내 집에서 군대 생활을 한 셈이다.

그 친구는 영창도 모르고,유격훈련도 모른다.

 

도데체 무슨 빽으로 군대 3년을 집에서 빈둥빈둥하면서 제대를 한 것인가 하면 그 책무는 사단장 식자재 당번이다.집에서 밥먹고 놀다가 사단장 요리 재료를 들고 사단에 갖다주면 임무가 끝나는 특별직이였는데... 그런걸 우리는 

 

"사단장 빽이다"

 

라고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사단장 뺑이 아니고 

 

"한국 똥별 빽이였다"

6.

한겨울 눈이 내리면 소대원들은 면소재지 삼거리에서 사단 입구 까지 역 4km 길을 눈을 치운다고 새벽부터 애를 먹었다.

전에 사단장 시절에는 그래도  아침 먹고나서 눈 치우는 작업을 했고 작업중에 우리들에게 사탕도 나누어 주고 수고한다고 했었는데...사단장이 바뀌고 나서는 자기 출근 전에 길 위에 눈을 다 치우라고 명령하여 새벽 부터 눈 치우는 작업을 했었고 

그도 사단장 차가 출근 길에 조금이라도 눈에 미끄러지는 날은 눈 작업을 한 사병들을 ,,,웃통을 까고 눈으로 마사지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도록 벌을 내렸다.

그리고 나서는 개울에 무거운 돌을  하나 씩 어께에 메고 부대로 복귀하여 그 돌로 부대 담을 쌓는 지시를 내렸다.

 

그당시 다들 김신조 때문에 부대 군기가 쌔졌다고 전부 김신조 욕을 했는데...제대 후 미국에가서 사는데,,뉴욕 타임지가 

 

" 한국은 똥별이 너무 많은 나라"

 

라는  기사를 내었고 그리고 나서 나는 전방 부대서 일어 난 무지막지한  인권유린도 위국헌신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는데...그런 혹독한 고생은 위국헌신이 아니고  심보가 나쁜 똥별이 군법을 무시하고 지멋되로 사병들을 영창보내고 한 것으로  늦게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밥풀떼기 하나만 달아도  훌륭한 장교로 존경하고  별을 하나 달았던 사람은 하나님 이상으로 복종하고 설설 기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가장 인권유린이 심했던 군대생활이였다는 것을 지울수 없다.

 

나이가 드니 자연  사색의 깊이도 달라지고

살아가는 가치관의 사고도 달라지니

잘 나가던 동창회도 졸업을 하고

더더욱이 싸움박질 하는 정치는 경멸스러워 여의도를 돌아 갈 정도지만   요며칠  토막 살인 사건이  뉴스 화면을 보고나니 

문득 오래전  껵었던 혹독한 전방부대 똥별 행상머리도 어제처럼  스친다.

필자 말고도 그 시절 군에서 억울하게 영창 끌려가서 혹독한 린치를 당하신분 많은 나라다.

내 친척 동생은 군에서 너무 맞아서 뇌가 이상하게 되었지만 .. 일평생 사람없는 산속에 혼자 앉아서 희죽 희죽 웃는 정신질환자가 되었지만  단 1원도 보상 받지 못하는데..그런 분들 의외로 조사하면 많이 나 올 나라다.

 

그래 도 그렇치...인간들아 인간들아! 니들이 똥별이 아니던가!

 

세월이 무려 50년이 더 지났지만  지금도 한국은 ..... 똥별들이 설치는  나라다!

 

 

..............어주자 인생 일지장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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