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날 오후에 적근산 하늘이 우중충 해지더니 결국 새벽 2시가 넘어서자 외곽 경비 초소에도 함박눈이 내렸다.
말이 경비초소이지 그냥 산밑에 땅굴을 파고 그 당시는 비닐 조각도 귀하던 시절이라서 초소 입구는 싸리나무 틀에 헌가마니를 걸쳐 놓아서 한겨울 칼바람을 겨우 막아주는 정도였다.
한시간마다 교대를 하는 야간 보초였는데 워낙 추운 전방지대라서 한시간 보초를 서고 나면 발이 얼얼했고 볼떼기는 얼어서 육성 암호교대도 입이 얼어서 생략하고 캄캄한 초소 쪽으로 걸어오는 자태만 보고 같은 부대원으로 인지했다.
막사 쪽으로 걸어오면서도 하늘에서 함박눈이 내리면 저의기 걱정이였다.
왜야하면 요즈음 처럼 제설차량이 있던 시절도 아니고 사단장 출근 길에 쌓이는 눈은 우리 부대가 싸리 빗자루로 책임지고 새벽부터 손으로 쓸어 치워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 소대원들은 면소재지 삼거리에서 사단 입구 까지 역 4km 길을 눈을 치운다고 새벽부터 애를 먹었다.
전에 사단장 시절에는 그래도 아침 먹고나서 눈 치우는 작업을 했고 작업중에 우리들에게 사탕도 나누어 주고 수고한다고 했었는데...
퍽하면 쫄병들을 사단 영창에 보내보리는 고약한 사단장이 새로 오고부터는 자기 출근 전에 길 위에 눈을 다 치우라고 명령하여 새벽 부터 눈 치우는 작업을 했었지만
치워도 금새 또 눈이 내리고 하여 사단장 차가 출근 길에 조금이라도 눈에 미끄러지는 날은 눈 작업을 한 사병들을 ,,,
그 눈밭에 줄을 세워 놓고 웃통을 까고 눈으로 마사지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도록 벌을 내렸다.
그리고 나서는 개울에 무거운 돌을 하나 씩 어께에 메고 부대로 복귀하여 그 돌로 부대 담을 쌓는 지시를 내렸다.
2.
별이 똥별로 바뀌고나서 ...거수 경례시 왼팔이 붙지 안하도 영창.
차려 자세에서 두 다리가 붙지 안아도 자세 불량으로 워카 발로 촛대를 까면서 호통을 치니..각 내부반 점호 쥐침시에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 졌다.
즉 다리가 벌어진 사병은 혁띠로 두 다리를 오무려 묶고 잠자도록 지시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어릴적 전부 등에 엎혀서 자랐기 때문에 두다리가 나란히 붙지 아니하고 조금씩 뻐덕 다리로 벌어진 사람들이 많은데..그걸 다 자란 성인 청년들에게 새삼 차렷자세에서 다리가 붙어야 한다고 사단장 놈이 지적을 하니 ..선임상사는 무조건 다리 교정차원에서 잠 잘 때 혁띠로 다리를 묶어자라고 했기 때문이다.
전방부대인데..만약 새끼 김신조라도 넘어 온다면 다들 허벅지를 묶은 혁뛰 풀다가 죽을 일인데.....
참으로 웃기는 일이 똥별 지시로 벌어진 셈이다.
3.
지난주도 위병소에 전남 여수에서 오일병 모친이 그 먼길을 달려와 면회를 왔었는데..마침 사단장 차가 통신대로 들어오니 위병서던 쫄병이 지례 겁을 먹고
"아주머니 고개 숙이시던지 앉으세요,,사단장 차 옵니다."
혹여 무슨 지적으로 영창 갈까 두려워 다급하게 소리치자 ..아들이 위병소로 나오기를 기다리시던 모친이( 가족이 면회를 오면 우선 군복도 다시 다리고 구두도 반짝 반짝 딱아 모양세를 내어서 위병소로 보내기 때문에 면회와도 만나는 시간이 지연이 되던 시절이였다)
누군가 자기에게 인사 안하고 숨는 모습을 감지한 사단장 차가 위병소에 도착하고
"방금 인사 안하고 고개 숙인 사람 누구냐?"
사단장 차에 탄 보좌관이 사단장 명령으로 위병에게 물었고...그날 오후에 헌병대 차가 와서 그날 위병 근무자를
"워카 끈 풀어 이 새끼야!"
하더니 들어가기만 하면 3-4일 똥도 나오지 안는다는 그 악명 높은 사단 헌병대 영창으로 끌려갔다.
3.
또 있다.
두달 전에는 우물파던 사병들이 사단장 차가 뜨자 하급히 우물 구덩이 안으로 전부 숨었다가 한명도 아니고 그날 작업자 5명 전부 사단 영창에 끌려가서 밤새도록 영창 창살에 까꾸로 매달려 끙끙 거리면서 발바닥을 얻어 맞았는데..그때 인간 입에서도 고통이 심하면
사람 소리가 아니고
"동물 소리가 난다"
는 것을 알았다.
또있다.
난 군대 생활 3년 내내 외출 한번 한적이 없는데...제대 특명을 받은 날 소대장님이
"조병장 제대 특명 축하한다, 외출증 끓어..내가 소주 한잔 사지"
그래서 시내에 나가서 여관 방을 잡고 소주는 사고 술안주는 돈도 없었지만 여관 앞 식당에서 그냥 라면 한 냄비 끓여와서
소주 여러병을 비우고 그 라면 냄비 식당에 돌려주려고 냄비들고 가다가 사단장 차에 걸려서 바로 사단 cpx가 걸리고
나도 워카 끈 풀고 헌병대 영창으로 끌려갔다.
흔히 우리 군대서
"말년에 피 본다"
라는 말이 유행했는데..내가 그 꼴이되어서 사단 영창 감방에서 12월 24일 들어가서 지구상 그 어디서도 경험해보지 못할 그런 인권유린 사각지에서 혹독한 린치를 경험했다.
그 좁은 방에 똥통으로 사용하는 깡통 하나 있고 무려 20명이 넘게 새벽 3시까지 오만가지 요상한 체벌을 받다가 겨우 취침이 떨어지면 문제는 공간이 좁으니 누워 잘 수는 없고 칼잠을 자야했다.
유엔 인권 보고서에 등장되는 탈북민이 혹독하게 인권 유린 당했다는 북한 노동 단련대 칼잠 이야기가 사실은 남한에서도 일어 났던 인권 유린이다.
머리에 든것없이 별을 단 인간이 권위와 고함만 지를 줄 알아선지 남한 군대 영창의 인권 유권 유린도 실제로 비슷한 일들이 벌어 졌었다.
고교시절 학생 복싱 선수 생활을 했던 터라서 얻어 터지는 것은 어느 정도 이력이 난 체격이지만 한방의 훅으로 다운되는 것은
잠깐 기절로 그리 고통도 심하지 않치만 ....밤새도록 잠 안재우고 철창에 매달아 놓고 몸두리로 발바닥을 후려치면 그 고통은 정말이지
인간으로 태어나서 한번은 몰라도 두번다시 하고 싶지 않은 일이였다.
그 당시 감방 룰? 이 감방 복도에서 바로 철창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만가지 체벌로 졸도를 해야만 감방 문을 넘을 수 있다는
비인간적인 룰이 적용되었고 같이 처벌 받던 쫄병은 체벌로 요상한 동물 소리를 내더니 드디어 눈을 뒤집고 졸도하자 질질 끌고 감방 안으로 집어 넣은 다음 찬물을 퍼붙자 ...다시 흰 눈동자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도 처음 보았다.
문제는 나도 계속 얻어 터지는것보다 졸도하는 것이 낳을 것 같았지만 .....야속하게도 내 몸은 얻어 터져도 졸도가 되지 않았다.
세상에 인간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으면 ...졸도 되기를 바라겠는가!
가정에서는 애비가 양아치면 아들 딸도 양아치스럽고 군대는 사단장이 유덕하면 사병들도 따르지만 ..사단장이 고약하게 퍽하면 영창을 보내니 자연 그늠의 사단 헌병대 감방수도 덩달아 악랄하기 그지 없었다.
4..
연대장 넘이 스케이트를 좋아하는 바람에 ..곡운구곡 그 아름다운 강변에 물을 막아 스케이장을 만들었다.
영하 20도가 가까운 날에도 우리소대는 그 강변 스케이트 장에서 좋은 얼음상태를 유지 하려고 애를 먹었는데...날이 매우 추우면 전날 빙질을 좋게 하기 위하여 물을 새로 더 채웠는데 얼음도 혹한 칼바람에 얼면서 표면이 우들투들 해져 버렸고 ...
일이 꼬이면 덮친다고..하필이면 연대장 부인이 얼음 깨진 곳에 발이 빠지는 바람에 이래 저래
빙질 관리 잘 못한 죄목으로 방한복도 없이 덜덜 떨면서 일하던 쫄병 전원이 처벌을 받았다.
5.
전방에서 근무하다가 후방기 훈련으로 차출되어서 호수가 아름다운 큰 도시에 있던 부대에서 미제 엔트락 3 신 통신 기기 운영교육을 받는데 내 옆자리에 최전방서 근무했다는사병이 왔는데..쫄병이 아니고 병장이다.
그는 일체 말이 없었다.
나중에 알콜 더 타서 뻥튀기식으로 만든 전방 부대 막걸리 한잔하면서 그 병장님 이야기 들어보니 기가 막혔다.
연대장 집에서 빨래 병으로 근무했는데..세상에 그 연대장 마누라가 생리 빨래도 시켰다는 것이다.
생리 빨래는 차가운 물로 빨래가 안되므로 연탄 불에 물을 끓려서 해도 빨래가 깨끗하게 되지 않아서 꾸중을 듣고나니 순간 화가나서
욕을 했다가 ....마누라 관리도 제되로 못하고 부끄러움도 모르는 연대장 놈이
"너 영창 갈래 아님 다른 부대로 갈래~:
하여 다른 부대로 오게 된 사연이다.
생리 빨래는 자고로 부끄러움이 있는 물건이라서 시골에서도 우물 가에서는 빨래를 하지 못하고 동네 한쪽 귀퉁이에 있는 논 웅덩이 같은 곳에서 아녀자들이 모여서 빨래를 했는데..그것을 서답 빨래라고 했었다.
그런 서답 빨래를 젊은 남자 쫄병에게 맡기다니!
지금 그런 일이 일어 났다면 해외 토픽 감이다.
6.
내 불알 친구 중에 ...땅부자 집 친구가 있었다.
땅이 많으니 새끼머슴.중머슴.상머슴 머슴이 무려 3명이나 있었던 부자집인데..내 친구는 3년 내내 집에서 군대 생활을 한 셈이다.
그 친구는 영창도 모르고,유격훈련도 모른다.
도데체 무슨 빽으로 군대 3년을 집에서 빈둥빈둥하면서 제대를 한 것인가 하면 그 책무는 사단장 식자재 당번이다.
집에서 밥먹고 놀다가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 사단장 요리 재료를 들고 사단에 갖다주면 임무가 끝나는 특별직이였는데...
그런걸 우리는
"사단장 빽이다"
라고 엄청 부러워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사단장 빽이 아니고
"썩은 된장같은 한국 똥별 빽이였다"
7.
그당시 월남 패전이 다가오고 다들 남한 공산화 두려움+김신조 때문에 부대 군기가 쌔졌다고 전부 김신조 욕을 했는데...제대 후 미국에가서 사는데 뉴욕 타임지가
" 한국은 똥별이 너무 많은 나라"
라는 기사를 내었고
그 기사를 읽어보기전에는 젊은 시절 전방 부대서 일어 난 무지막지한 인권유린도 위국헌신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는데...
그런 혹독한 고생은 위국헌신이 아니고
"심보가 나쁜 똥별이 군법을 무시하고 지멋되로 사병들을 영창보내고!!"
한 것으로 뒤 늦게 깨닫게 되었다.
그 당시 쫄병들은 밥풀떼기 하나만 달아도 훌륭한 장교로 존경하고 별을 하나 달았던 사람은 하나님 이상으로 복종하고 설설 기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지구상에서 가장 인권유린이 심했던 군대생활이였다는 것을 지울수 없다.
8.
우리 사단에 똥별이 부임하고 또 달라진것이 있다.
사단 3거리에 헌병 초소가 있는데...경례 할 때 소리가 적다고 위병서던 쫄병이
사단장으로 부터 일명 군대 용어로
"촛대를 까였다!"
소문이 돌면서 사단장이 뜨면 워낙 겡례 소리가 우렁차니 왠만한 장소까지 다 알게되어 사병들이 일을 하다가도 미리 도망치기가 수월 했다.
건너편 고개 아래 의무대가 있는대..그 위병소에서 사단장 차를 보고 경례 인사 소리통이 1km가 훨씬 넘는 우리부대까지 울렸고 ..그때부터 위병소 근무자도 정신 바짝 차리고 사단장 차가 후반기 훈련 부대 쪽으로 가는지 아님 우리 부대 쪽으로 오는지 귀를 쫑긋 세웠다.
그 똥별 사단장이 오고 새로 생긴 소위 자유소대가 하나 생겼다.
장길산 산도적들이 넘었다는 00산에 풀어서 독사를 잡아오게 하였고 그 독사를 얼마나 처먹은지 뚱뚱한 체격이 되어..지휘봉으로 사병들 훈시하면서 쿡쿡 배를 찌를 때는 정말이지 뱀같이 보였다.
9.
우게 글이 그러하다가 이 쫄병이 장교와 나쁜 추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1978년 시카고 전자쇼에 갔다가 시어스 타워 앞을 지나가는데...스치듯 지나가는 동양인이 어디선 많이 본듯한 모습이라서 ..뒤를 돌아보니 저만치 가던 그분도 가던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봤다.
아.. 그재야 생각났지만 그분은 내가 논산 훈련소 나와서 그 전방 부대에 처음 도착 했을 당시의 중대장이셨다.(약 1년 정도 중대장)
"중대장님!"
큰소리로 달려가서 반갑게 악수 하고 그분도 갸우 뚱하다가 무전기 수리 잘하던 통신 쫄병이라는 것을 알고는 너무 기뻐하셨다.
지구가 크다지만..그날 만큼은 한없이 좁아보인 날이다.
알고보니 그분은 내가 다니던 미국 회사에서 수만대 전자제품 oem 생산을 하던 국내 구미공단 s전자였고 그분은 s 전자 시카고 파견 사무실에서 근무하셨ek.
새까만 이 쫄병은 s 전자 바이어 측 미국서 가장 큰 전자회사 Radio shack 본사에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 후에 그 중대장님과는 또 한차례 우연히 만났다.
귀국 후 미국회사 한국 사무실에 근무 할 때인데...그 중대장님이 내가 다니던 미국회사 입사 시험을 보러 온 것이였다.
군대 인연이라고 제대하면 끝난게 아니였다.
언젠가 살다보면 삶의 자락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마련이다.
10.
나이가 드니 자연 사색의 깊이도 달라지고
살아가는 가치관의 사고도 달라지니
잘 나가던 모임도 졸업을 하고
더더욱이 매일 나라 일은 하지 않고 그저 싸움박질 하는 여의도 동네는 어쩌다 지나 갈 일이 있어도 다른 길로 돌아 갈 정도지만
요며칠 내연녀 토막 살인 사건과 된장같이 생긴 전직 장군출신을이 국회서 고함만 지르는 형태를 보고나니
문득 오래전 호통만 치던 무식한 전방부대 똥별 행상머리도 어제처럼 스친다.
필자 말고도 그 시절 군에서 억울하게 영창 끌려가서 혹독한 린치를 당하신분들을 재조사 한다면 틀림없이 많을 나라다.
내 친척 동생은 군에서 너무 맞아서 뇌가 이상하게 되었고
그 이후 일평생 사람없는 산속에 혼자 앉아서 희죽 희죽 웃는 정신질환자가 되었지만 단 1원도 국가로부터 보상 받지 못했다.
군생활에서 억울하게 피해를 본 일반 사병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래 그렇치...별들아 별들아! 니들이 진짜 별이 아니고 순 똥별이 아니였던지 죽기전에 한번 생각 해보시라!
세월이 무려 50년이 더 지났지만 지금도 한국은 ..... 똥별들이 설치는 참 이상한 나라다!
..............어주자 인생 일지장 중 일부..................
https://www.youtube.com/shorts/eXxWOdMN24k?feature=share
사단장 이름은 그래도 이곳에 밝히는 것은 그러하고 얼굴은 지금도 기억하는데 우연히 본 위 유투브에 나 온 원숭이와 너무 흡사해서 동영상 올려 드림니다.
심했네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