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의 LP 카페에서, 아날로그 감성에 젖다
강원도 속초의 한적한 골목을 걷다 보면, 지금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진 먹자골목 끄트머리.
시간의 흔적이 묻어나는 오래된 아파트 건너편에 오래된 간판이 눈길을 끄는 작은 카페가 하나 있다.
소설 ....
4월의 공기 속에서도 설악산은 아직도 눈을 이고 있다.
그 설경을 바라보며 문을 밀고 들어서자, 은은한 조명 아래 LP 레코드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이 발걸음을 반긴다.
50년대 재즈 시대의 분위기가 묻어나는 Eddie Higgins Quintet 스콧해빌턴 의 부드러운 색소폰소리.
벽면을 가득 채운 5000여 장의 LP와 알텍 스피커,
Denon, Technics 두 대의 턴테이블이 아날로그 감성을 한껏 살려준다.
이곳 "소설" 은 우연히 알게 된 카페다.
속초에서 "소리전자"를 통해 새로운 인연으로 사귀게된 한 친구—LP를 사랑하는 음악 애호가이자,
양양 낙산에서 LP 카페를 운영하다, 지금은 조용히 노년을 보내는 그 친구의 소개로 찾아왔다.
원래는 단순히 내 턴테이블 을 양도할 겸 들른 곳이었지만,
이제는 커피 한 잔을 즐기기 위해, 음악적 대화를 위해 자주 찾는 나만의 아지트가 되었다.
속초는 내게 전혀 연고가 없는 곳이었다.
그저 와이프와 "5년만 살아보자"는 계획으로 내려와,
세컨드 하우스로 속초 해수욕장이 내려다 보이는 바닷가 앞에 아파트를 마련하고
속초와 서울을 반반씩 오가던 삶.
하지만 어느세 이제는 속초가 내 주된 생활지가 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알게 된 친구의 후배—이제는 나에게도 후배가 된 60대 카페 주인이 이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광고는 아니니 오해 금물!)
카페 한쪽에서는 조용히 음악이 흐른다.
아날로그 특유의 따뜻한 잡음이 섞인 사운드가 공간을 채우고,
디지털 음원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은 울림이 가슴을 두드린다.
오늘의 주인장 선곡 Eddie Higgins Quintet. 의 "My foolish Heart"
새로 구입한 음질좋은 새 레코드에서 흘러나오는 스콧 의 색소폰과 하디의 피아노
베이스 소리가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든다. 그리고 "Am I blue"
내가 카운터 의자에 앉으면 언제나처럼 말없이 내어주는 커피.
"소설 하우스커피"—주인장 의 즉석 그라인딩과 핸드 드립 하는 손놀림에 깊고 부드러운 향이 퍼진다.
LP가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커피를 한 모금 머금으면,
입안에서 느껴지는 산미와 쌉싸름한 맛, 그리고 달콤한 잔향이 조화를 이룬다.
이곳에서의 커피 한 잔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공간과 시간 속에 녹아든 하나의 경험이다. 카운터에 앉아 LP 재킷을 넘겨받아 천천히 살펴본다...
주인장 이 너무나 아끼는 손때 묻은 오래된 앨범들이(LP를 절때 눞이지 않을만큼 레코드를 아낌)
이곳의 30여년 된 역사와 이야기를 증명하는 듯하다.
가게 곳곳에는 주인의 애정이 묻어 있는 다양한 소품들이 자리하고 있다.
벽면에는 전설적인 음악가들의 포스터와 커리커쳐,
스토리 가 있을것 같은 극단의 포스터... 직접 촬영한 듯한 사진들이 걸려 있어,
마치 작은 음악 박물관에 온 기분이 든다.
벽선반 에는 사이폰 커피 도구와 빈티지한 그라인더, 핸드드립 세트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한쪽 구석엔 낡은 악기와 쓰임을 다한 턴테이블이 소품들과 자리해,
아늑한 이공간에 따뜻한 온기를 더한다.
가끔은 오전에 일찍 이곳에 들리면, 진심을 다해 직접 로스팅 하는주인장과,
원두룰 로스팅 할때의 구수한 커피볶는 냄새를 맡을수 았다.
창밖을 보니 아파트 담장 너머, 매화나무가 몽우리를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다.
속초의 바닷바람이 실어온 소금기 머금은 공기, 하얀 눈을 이고 있는 웅장한 설악산의 풍경,
그리고 그 소도시의 한가운데에서 울려 퍼지는 발라드와 재즈 선율.
이 카페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오래된 레코드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커피 한 잔에 마음을 담아보는 곳이다.
속초의 조용한 하루, LP 레코드가 흐르는 이곳에서,
시간은 천천히, 그리고 깊게 흘러간다.
알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