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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겨우 조금 느낀 오디오

by 윤영진 posted May 0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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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를 통해서 사람들이 나름대로 추구하는 방향은 크게 보면 두 가지 길이 있는 것 같습니다.

1. 좋은 소리를 늘려 나가는 방향
2. 나쁜 소리를 줄여 나가는 방향

저도 처음에는 좋은 소리를 늘려 나가는 방향으로 노력했습니다.
다이내믹스도 늘리고, 대역도 늘리고, 임장감도 늘리고....
샵이나 동호인 집에서 들은 좋은 소리 특성이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 따라가려고 바둥거리고....
하나라도 더 좋은 유닛이나 소자, 부품이 있으면 탐을 내고.....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닌데 탐나는 기기가 있으면 무리해서 구입해서 캐비넷에 쌓아놔야만 속이 풀리고...

그러다가 이런 노력이 "소금물을 마셔서 갈증을 해소하려는 일"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성에 차지 않고, 음악에서 마음만 멀어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욕심과 유혹을 뒷받침해 주지 못하는 재정적 능력은 심리적인 갈등 요인이 되어 불만족과 부족감을 더 키웠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나쁜 소리를 줄이는 방향"으로 바뀌었습니다.

물론 이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일단 그 방향은 전처럼 심리적으로 전처럼 애달복달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없는 것을 갖기 위해서 애쓰는 것이 아니라 갖고 있는 것을 잘 닦고, 수선하고, 조이고....
비틀린 것을 바로 펴고, 넘친 것을 줄이는 일이니....
비싼 새 기기로 얻지 못하던 것을 쳐박혀 있던 하찮은 기기에서 찾는 기쁨도 생겼습니다.
친한 한의사 분이 "산삼 녹용, 웅담만 먿는다고 몸에 좋고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다. 흔하고 값싼 약재라도 체질과 증상에 잘 맞게 조합이 되면 최상의 효과를 낸다."고 했던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느낌입니다.

그러다 보니 소위 말하는 "오디오의 매력"이라는 것은 사못 줄었습니다.
음은 점점 더 단순해지고, 덤덤해지고, 심심해졌습니다.
전에는 오디오파일적으로 음향이나 녹음 등이 안 좋아서 못 듣던 음반도 이제는 별 불편없이 듣게 되었습니다. 기기가 음반의 단점을 지나치게 들어내지 않게 된 탓인가 봅니다.

얼마 전, 거실에 놓혀 영화감상시 AV용으로만 사용하는 신형(10년 쯤 된^^) 소형스피커를 통해서 TR앰프로 음악을 들어 보았습니다. 진공관 음만 듣던 탓인지, 엣지가 선 고음과 의도적으로 강조된 중저음 등이 새로운 매력으로 들렸습니다.
그저 그런 중급의 TR시스템에, 몇 년간 튜닝이나 업그레이드도 신경 쓰지 않은 것이 상당히 매력적인 소리를 내는 겁니다.
솔직히 그동안 오디오에 기울인 노력이 헛된 것이었다는 실망과 상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30-40분을 넘기면서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음악 듣기가 괴로워졌습니다.
굳이 지적할만한 이유도 없습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신경이 곤두서고, 음악이 아름답다고 느껴지지 않고 불편해졌습니다.
AV용으로 들을 때는 잘 몰랐는데....

결국 1시간 만에 음악을 끄고 다시 평소 듣던 고물 오디오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비교해서 듣다보니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오디오적", "하이파이조", 라는 것이 '강조'에 의한 감각적 매력에 의존한 것이라는 것을....

요즘 영화나 TV에 등장하는, 아니 그냥 길에서 보이는 젊은 여자들이 성형수술과 화장과 멋진 옷으로 차린 것을 보면 예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전부 '아름답게 보이는 기술'로 온갖 치장을 한 탓입니다. 그러나 어쩌다 차라도 한 잔 들면서 대화를 해 보면 실망할 일이 많습니다.
생각이나 감정, 가치관과 철학과 교양 등등 내면적 아름다움이 부족한 것을 느끼고 나면 겉의 아름다움이 일시에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립니다.

오디오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덤덤하게 다가오지만 사귀고 시간을 함께 할수록 정이 쌓이고 서로를 관용하게 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사람도 여럿 모여 있을 때, 자신만 드러나게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주위를 돗보이게 해서 결국 자신을 포함한 전체를 훌륭히 만드는 사람이 있듯이....

오디오와 음악이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지, 불안하고 고민하게 만들지 결국 내 마음가짐에 달렸다는 쉽고 평범한 논리를 확인하는 과정이 참 여려웠습니다.

소리전자 게시판은 오디오로 고민하는 분들에게 참 좋은 공간입니다.
이 곳에서 더 비싸고 화려한 기기를 구해 주지도 않고 특별히 그런 기기를 써야 한다고 부추기지도 않습니다. 그저 나쁜 소리를 줄여나가는 경험과 지혜들이 나날이 축적되어 가는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즐깁니다.
요즘처럼 일과 술에 건강을 잃으며 살 때는, 자주 못 들려도 더욱 소중한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