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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에서의 좌절고미 야스스케

by 윤영진 posted Aug 19,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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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소설가 고미 야스스케는 저명한 아쿠다가와상을 수상한 훌륭한 작가였으나,
오히려 저명 작가보다는 "오디오 매니아(진정한 의미의 미친 사람)'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이 양반의 타노이 오토그래프에 대한 집착은 편집증적인 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이 드신-60대 이상의- 오디오 매니아들 중에서 일제시대에 태어난 분들은 일본어를 배운 탓에 주로 일본의 오디오 잡지와 서적을 통해서 오디오를 접했습니다.
이 분들에게 있어서 고미 야스스케의 ‘서방의 소리’나 ‘오디오 순례’는 일종의 성서처럼 여겨지던 저서였습니다.

그런데 이 고미 선생은 오디오에 미쳐서 모든 생의 열정을 오디오에 바쳤습니다.
문학성 짙었던 저작 생활을 접고, 돈을 많이 받는 무협소설(사무라이 소설)을 쓰게 된 것도 오디오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한 마디로 일본 문학계의 손실이었습니다.

이 분이 오디오에 미쳤던 시기 역시 진공관 기기가 최절정에 달했던 시기였습니다.
세게에서 유명하다는, 소리가 좋다는 기기는 전부 사들여서 온 집에 널어놓고 수도 없이 매칭을 바꿔가며 원하는 소리를 찾아서 고행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진공관 기기 제작의 명인들에게 제작도 의뢰하고, 본인 스스로도 자작에까지 손을 댄 모양입니다.
한 마디로 가는 데까지 간 오디오 라이프였던 것 같습니다.
중기에는 트랜스결합에도 빠진 듯 한데, 마지막에는 OTL에 집착해서 6AS7 등의 관을 수없이 병렬로 묶어서 앰프를 만들어 시연도 했답니다.
특히 이 때는 스피커도 올혼 시스템으로,
올혼+OTL앰프로 끝장을 보겠다고 했답니다.

그런데 이 분이 1970년대에 당시 발매된 일본 S사의 50W 출력의 TR앰프를 들어보고는,
이제 진공관앰프는 손 땐다고 하고 손을 턴 것입니다.
물론 프리앰프는 진공관식을 그 이후로 썼다고 합니다.

즉, 파워앰프는 더 이상 진공관식의 상대적 장점을 찾지 못한다고 항복을 한 것입니다.

이런 일이 일본의 마니아들에게는 충격과 배신과 상처로 여겨진 모양입니다.
마치 직렬3극관 앰프가 아니면 소리가 아니다라고 교주처럼 신자들의 정신세계를 영도하시던 분이 갑자기, 직렬3극관을 부정하고 새로 나온 싸구려 TR의 소리를 인정한 것이 얼마나 놀라운 뉴스였겠습니까?

아마 자신의 생과 혼을 모두 부어서 오디오의 극한을 추구하다보니,
그게 파랑새처럼 주위에서 맴돌고 있다는 절망감을 영혼의 피로한계처럼 받아들인 듯합니다.

적절한 거리와 수위 조절이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요즘 여른 더위 핑계로 TR앰프를 듣다가 갑자기 고미 선생의 TR앰프 변절사건이 생각나서 두서없이 끄적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