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전에 여성구선생님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스피커와 사람의 고막과 청각신경 등은 가장 왜곡이 심한 것들입니다.
소스기나 앰프류는 쉽게 거의 플랫한 특성을 만들 수 있지만,
스피커란 것은 아무리 잘 만든 것을
무향실에서 측정을 해도 상어가 뜯어먹다 뱉은 수준의 특성을 보입니다.
더욱이 "순간 왜곡"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지연 왜곡"까지 더해집니다.
원래 "탕!" 소리만 0.1초 동안 나야 할거라면,
"탕타다당탕...."식의 시간 지연 왜곡이 0.5초쯤 일어나는 식입니다.
거기에 또 "위상 변이"까지 더해지고....ㅠㅠ
이게 다시 무향실보다 더 악화된 가정내 공간에서 재생이 되면
정말 측정 그래프를 집어던지고 싶을 정도로
괴상망측하게 됩니다.
가정내 공간의 스피커 음향재생 특성을 정밀 측정한
시각 자료를 보고 나면, 앰프에서 주파수 특성을
고르게 뽑기 위해 0.1%를 놓고 노심초사하던 일이
다 허무하게 느껴집니다.
스피커는 그렇다 치고,
사람의 귀는?
사람의 귀도 20-20,000Hz를 평탄하게 듣지 못합니다.
사람의 귀가 받아들이는 주파수특성도 역시 상어가 뜯어먹다 뱉은
수준에 근접합니다.
문제는 같은 상어가 모든 사람의 청각 특성을 동일하게
물어뜯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각기 이빨이 다르게 난 각각의 상어들이
사람의 청각특성도 다 다르게 물어뜯어놔서
그 모양새가 다 다릅니다.
즉, 이 세상의 모든 스피커의 음향 재생특성이 다 다르듯,
사람마다 듣는 음향 특성이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시스템을 똑 같은 조건에서 들어도 모든 사람의 뇌에는
각각 다 다르게 인풋이 됩니다.
이는 뭘 말하고자 하는 것이냐면.....
"다 제 발에 맞는 편자가 다르다."
는 것입니다.
"나는 이게 좋은데 왜 제는 이걸 안 좋아하지?"
라는 의문처럼 엉뚱한 게 없습니다.
"나는 막걸리가 좋은데 왜 저 사람은 맥주를 좋아하지?"
그리고 꼭 원음과 같아야 좋은 것만도 아닙니다.
사람의 미적 감흥은 아주 심미적인 복잡성을 갖고 있습니다.
즉, 원음만 좋아한다는 것을
해상력이 좋은 사진만 시각적으로 좋아하는 것에 비유하자면
원음이 아닌 더 좋은 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회화(그림)"을 사진보다 더 좋아하는 미적 기호로 볼 수 있습니다.
여인을 찍은 사진과 여인을 그린 피카소의 그림 두 가지를 놓고
누구는 사진을 좋아할 수도 있고
누군 피카소의 "과연 대상이 여인이었는지 잘 모를" 그림을 더 좋아할 수도 있습니다.
천정이 높은 성당에서 울려퍼지는 성가대의 음악에
가슴이 뭉클하기도 합니다.
천정이 높은 성당의 음향 공간이 원음 재생에 적합할까요?
아니지요. 배음과 잔향(Reverb)를 과장한 공간입니다.
왜 녹음실이나 송출실 등에서 "이어폰"으로 모니터링을 주로 할까요?
공간과 외부 잡음의 영향을 최소화시켜서 그나마
덜 왜곡된 모니터링을 하려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왜 마지막 마스터링 같은 가장 중요한 작업은
이어폰을 안 쓰고, 일반 모니터 스피커를 쓸까요?
모든 청취자의 대부분이 이어폰보다는 스피커로 듣기 때문입니다.
(실제 청취 환경과 유사한 조건에서 마스터링하는 것이 유리)
우리모두는 각기 다른 자신의 청감각과 기호에 맞춰서
개인적인 "이퀄라이징"을 끊임없이 하고 있습니다.
그 이퀄라이징을 우리는 "오디오 튜닝"이라고 부르면서....
이 이퀄라이징은,
일단 내 귀에 맞는 오디오 기기를 고르는데서 출발하고,
이걸 좀 더 미세하게 조정하는 것으로 지속됩니다.
문제는 이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보다 경험이 많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선경험을
참조하게 되고,
그 선경험과 나의 특성이 맞는 부분도 있고 안 맞는 부분도 있어서
또 헷갈리고....
결국 좋아하는 것은 추구하되
어느 정도에서 타협하고 너그러워지는 것 외에는 해결책이 없습니다.
음악 들으면서 나의 기호 맞추기도 힘든데
남의 기호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잖습니까?
그런 건, 그걸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맡겨놔도
이미 아주 엉망으로 잘 하고 있습니다.....^^
스피커와 사람의 고막과 청각신경 등은 가장 왜곡이 심한 것들입니다.
소스기나 앰프류는 쉽게 거의 플랫한 특성을 만들 수 있지만,
스피커란 것은 아무리 잘 만든 것을
무향실에서 측정을 해도 상어가 뜯어먹다 뱉은 수준의 특성을 보입니다.
더욱이 "순간 왜곡"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지연 왜곡"까지 더해집니다.
원래 "탕!" 소리만 0.1초 동안 나야 할거라면,
"탕타다당탕...."식의 시간 지연 왜곡이 0.5초쯤 일어나는 식입니다.
거기에 또 "위상 변이"까지 더해지고....ㅠㅠ
이게 다시 무향실보다 더 악화된 가정내 공간에서 재생이 되면
정말 측정 그래프를 집어던지고 싶을 정도로
괴상망측하게 됩니다.
가정내 공간의 스피커 음향재생 특성을 정밀 측정한
시각 자료를 보고 나면, 앰프에서 주파수 특성을
고르게 뽑기 위해 0.1%를 놓고 노심초사하던 일이
다 허무하게 느껴집니다.
스피커는 그렇다 치고,
사람의 귀는?
사람의 귀도 20-20,000Hz를 평탄하게 듣지 못합니다.
사람의 귀가 받아들이는 주파수특성도 역시 상어가 뜯어먹다 뱉은
수준에 근접합니다.
문제는 같은 상어가 모든 사람의 청각 특성을 동일하게
물어뜯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각기 이빨이 다르게 난 각각의 상어들이
사람의 청각특성도 다 다르게 물어뜯어놔서
그 모양새가 다 다릅니다.
즉, 이 세상의 모든 스피커의 음향 재생특성이 다 다르듯,
사람마다 듣는 음향 특성이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시스템을 똑 같은 조건에서 들어도 모든 사람의 뇌에는
각각 다 다르게 인풋이 됩니다.
이는 뭘 말하고자 하는 것이냐면.....
"다 제 발에 맞는 편자가 다르다."
는 것입니다.
"나는 이게 좋은데 왜 제는 이걸 안 좋아하지?"
라는 의문처럼 엉뚱한 게 없습니다.
"나는 막걸리가 좋은데 왜 저 사람은 맥주를 좋아하지?"
그리고 꼭 원음과 같아야 좋은 것만도 아닙니다.
사람의 미적 감흥은 아주 심미적인 복잡성을 갖고 있습니다.
즉, 원음만 좋아한다는 것을
해상력이 좋은 사진만 시각적으로 좋아하는 것에 비유하자면
원음이 아닌 더 좋은 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회화(그림)"을 사진보다 더 좋아하는 미적 기호로 볼 수 있습니다.
여인을 찍은 사진과 여인을 그린 피카소의 그림 두 가지를 놓고
누구는 사진을 좋아할 수도 있고
누군 피카소의 "과연 대상이 여인이었는지 잘 모를" 그림을 더 좋아할 수도 있습니다.
천정이 높은 성당에서 울려퍼지는 성가대의 음악에
가슴이 뭉클하기도 합니다.
천정이 높은 성당의 음향 공간이 원음 재생에 적합할까요?
아니지요. 배음과 잔향(Reverb)를 과장한 공간입니다.
왜 녹음실이나 송출실 등에서 "이어폰"으로 모니터링을 주로 할까요?
공간과 외부 잡음의 영향을 최소화시켜서 그나마
덜 왜곡된 모니터링을 하려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왜 마지막 마스터링 같은 가장 중요한 작업은
이어폰을 안 쓰고, 일반 모니터 스피커를 쓸까요?
모든 청취자의 대부분이 이어폰보다는 스피커로 듣기 때문입니다.
(실제 청취 환경과 유사한 조건에서 마스터링하는 것이 유리)
우리모두는 각기 다른 자신의 청감각과 기호에 맞춰서
개인적인 "이퀄라이징"을 끊임없이 하고 있습니다.
그 이퀄라이징을 우리는 "오디오 튜닝"이라고 부르면서....
이 이퀄라이징은,
일단 내 귀에 맞는 오디오 기기를 고르는데서 출발하고,
이걸 좀 더 미세하게 조정하는 것으로 지속됩니다.
문제는 이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보다 경험이 많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선경험을
참조하게 되고,
그 선경험과 나의 특성이 맞는 부분도 있고 안 맞는 부분도 있어서
또 헷갈리고....
결국 좋아하는 것은 추구하되
어느 정도에서 타협하고 너그러워지는 것 외에는 해결책이 없습니다.
음악 들으면서 나의 기호 맞추기도 힘든데
남의 기호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잖습니까?
그런 건, 그걸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맡겨놔도
이미 아주 엉망으로 잘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