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 하나가 아프면, 온 몸이 아픕니다.
몸 일부에 난 상처는 온 몸에 고통을 전합니다.
작은 상처일수록 오히려 더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측면도 강합니다.
한군데만 잘못 되어도 전체적인 심신의 균형은 깨어져 버립니다.
소리도 그와 같습니다. 그것은 분명합니다.
한군데가 아니라 몇 군데가 아픈지 알 수 없다면, 편안한 균형감을
찾는 데에 얼마나 많은 치유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지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소리의 어느 부분이 마음에 안들고 귀를 거슬리게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면,
그 부분이 상처가 난 자리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처가 다른 부분들도 딱 그만큼씩 망가뜨리고 있다는 것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소리는 어느 대역에 관계없이 함께 망가지고 함께 잡혀갑니다.
고역은 좋은데 저역이 영...라든지, 중고역이 잘렸는데 중역은 참 좋네....라든지,
그런 식으로, 어느 부분은 엉망인데 어느 부분은 좋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의 상처를 발견하여 회복을 시켰는데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채 발견하지 못한 다른 상처가 또 있다는 얘기입니다.
소리를 잡는 것은, 소리의 균형을 다듬어가는 것은 그렇게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과 다를 게 없을 것입니다.
상처의 원인과 증상을 명쾌하게 집어낼수록 오류와 시행착오와 정체의 고통스런
반복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픈 곳 하나쯤은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오디오파일이든 소리의 헛점 하나쯤은 안고 가고 있습니다.
가장 편안한 건강상태와 균형상태가 어느 정도이고 어떤 상태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가장 좋은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는 진정 알 길이 없습니다.
그저 아닌 것, 맞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시정해갈 뿐입니다.
과정 중에 편안한 상태를 만났다면 그 상태를 즐겨야 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또 다시 새로운 불편이 발견된다면 다시 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
이 정도 불편은 오히려 양념과 맛이겠구나, 싶다면 아마도 그 상태가 구현해낼
수 있는 최선의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즉, 좋은 소리.,...
인간은 진리를 소화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완벽한 소리를 만들 수 없습니다.
인간은 인간의 것만 만들고 소화할 수 있습니다.
그마나도 자기의 것과 자기 세계에 한정됩니다.
그것을 함께 나누고 즐길 수 있다면 아마도 환상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소리가 한정되어 있듯, 진짜 소리는 가청 범위 밖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사실일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의 소리를 만지고 지지고 볶는 일은 애초부터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기반을
전제를 하는 까닭에, 언제나 변화무쌍하고, 즐거움이 넘치면서도 괴롭고 고통스런 양면이
늘상 함께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상태가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라면, 비로소 좋은 소리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 바로 만들어진 물건들로 자리를 만들어 소리를 나누는 일이 이전에도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소리가 안정을 찾아가는 과정이 궁금하신 분들은 언제든지 방문이 가능하다는 주인장의
전언이 있습니다.
*동호인들이시라면 누구나 방문 가능한 곳이기도 합니다.
*가까운 길 먼 길 둘러 찾아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