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의 재생 音에 대한 나의 기준(01)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은 단순 음악을 소비하고 향유하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또 다른 취미의 경지를 뛰어 넘어 전문적인 지식과 다양한 정보를 요구하는 오디오를 통한 레코드 연주와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음반을 통한 재생 음악과의 만남은 오디오를 즐겨 하던 음악만을 즐겨 하던지 필수적인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생활 여유가 많은 사람은 공연장에서 실연을 통하여 생생한 음악적 호흡을 할 수 있다는 그것은 또 다른 낭만이자 축복이다. 이와 같은 조건의 삶을 여유 있게 향유하기엔 바쁘게 또는 치열한 일상을 겪어야 되는 현실이 우리를 슬프게 할 뿐이다.
오디오를 통해서 연주하는 음악을 듣는 일은 어쩌면 소시민적인 즐거움의 발산이요, 행복임을 알게된다면 남은 인생의 여정에서 귀한 애첩을 하나를 집안에 두고 사는 것이니, 참 행복의 세계에 살고 있음에 감사할 일이다.
시골에 사는 사람의 불만은 문화적 좋은 환경의 연주회장에 자주 가지 못함에 있지만, 결코 시간과 돈이 없음을 탓하지 않고, 시골에 사니 자연의 소리를 늘 듣고 사니 행복하다며 자위를 한다. 이건 사실 순전히 핑계요, 자기 합리화임을 알고 있지만 이렇게 해야지 어쩔 수 없다.
아무튼 실연을 가깝게 못하는 갈증을 나의 오디오를 통해서 연주를 하는 방법 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러하기에 부족한 마음을 오디오에서 재생되는 음악을 마치 연주회장에서 듣는 감동과 비슷하여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디오를 통한 음반을 어떻게 연주를 하여야 하는가 라는 나의 영원한 화두이다. 음반에 담긴 음원을 끄집어내는 작업은 또 하나의 수고와 예술적 취향이 수반되는 각자의 독특한 기교가 배양되어 있는 연주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다양성 있는 연주력을 갖게 한다.
어쨌든 먼저 나의 재생하는 음의 기준은 우선 단순하다. 나의 눈앞에서 베를린 필이 연주하는 듯한 착각,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에서는 연주자들의 각 악기가 일자로 좌우에서 적당한 간격으로 나란히 연주할 것, 또한 바이올린 협주곡에서는 오케스트라가 독주 악기와 균형을 이루며 여인의 젖가슴의 꼭지처럼 살포시 올라 있는 선율이 중앙무대 언저리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와야 한다.
개인적으로 애청하는 목소리, 노래하는 어여쁜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나의 귀 높이 만큼 알맞은 그 만큼에서 고혹적으로 나를 유혹하는 아름다운 소리로 들려야 한다. 특히 성악할 때 키가 너무 작거나 너무 키가 큰 여자는 부담스러워 진다. 그리고 성악가의 목소리가 너무 커도, 작아도 우리의 귀 신경을 예민하게 자극하므로 적당한 크기로 노래를 하여야 한다. 노래 할 때 너무 입술과 입이 큰 여자는 정말 사랑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기에 절대 사양을 하고 싶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은 단순 음악을 소비하고 향유하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또 다른 취미의 경지를 뛰어 넘어 전문적인 지식과 다양한 정보를 요구하는 오디오를 통한 레코드 연주와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음반을 통한 재생 음악과의 만남은 오디오를 즐겨 하던 음악만을 즐겨 하던지 필수적인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생활 여유가 많은 사람은 공연장에서 실연을 통하여 생생한 음악적 호흡을 할 수 있다는 그것은 또 다른 낭만이자 축복이다. 이와 같은 조건의 삶을 여유 있게 향유하기엔 바쁘게 또는 치열한 일상을 겪어야 되는 현실이 우리를 슬프게 할 뿐이다.
오디오를 통해서 연주하는 음악을 듣는 일은 어쩌면 소시민적인 즐거움의 발산이요, 행복임을 알게된다면 남은 인생의 여정에서 귀한 애첩을 하나를 집안에 두고 사는 것이니, 참 행복의 세계에 살고 있음에 감사할 일이다.
시골에 사는 사람의 불만은 문화적 좋은 환경의 연주회장에 자주 가지 못함에 있지만, 결코 시간과 돈이 없음을 탓하지 않고, 시골에 사니 자연의 소리를 늘 듣고 사니 행복하다며 자위를 한다. 이건 사실 순전히 핑계요, 자기 합리화임을 알고 있지만 이렇게 해야지 어쩔 수 없다.
아무튼 실연을 가깝게 못하는 갈증을 나의 오디오를 통해서 연주를 하는 방법 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러하기에 부족한 마음을 오디오에서 재생되는 음악을 마치 연주회장에서 듣는 감동과 비슷하여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디오를 통한 음반을 어떻게 연주를 하여야 하는가 라는 나의 영원한 화두이다. 음반에 담긴 음원을 끄집어내는 작업은 또 하나의 수고와 예술적 취향이 수반되는 각자의 독특한 기교가 배양되어 있는 연주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다양성 있는 연주력을 갖게 한다.
어쨌든 먼저 나의 재생하는 음의 기준은 우선 단순하다. 나의 눈앞에서 베를린 필이 연주하는 듯한 착각,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에서는 연주자들의 각 악기가 일자로 좌우에서 적당한 간격으로 나란히 연주할 것, 또한 바이올린 협주곡에서는 오케스트라가 독주 악기와 균형을 이루며 여인의 젖가슴의 꼭지처럼 살포시 올라 있는 선율이 중앙무대 언저리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와야 한다.
개인적으로 애청하는 목소리, 노래하는 어여쁜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나의 귀 높이 만큼 알맞은 그 만큼에서 고혹적으로 나를 유혹하는 아름다운 소리로 들려야 한다. 특히 성악할 때 키가 너무 작거나 너무 키가 큰 여자는 부담스러워 진다. 그리고 성악가의 목소리가 너무 커도, 작아도 우리의 귀 신경을 예민하게 자극하므로 적당한 크기로 노래를 하여야 한다. 노래 할 때 너무 입술과 입이 큰 여자는 정말 사랑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기에 절대 사양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