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의 재생 音에 대한 나의 기준을 마치면서(03)
나의 오디오의 재생 音에 대한 나의 기준이라는 제목으로 어설픈 글을 쓰면서 정말 제대로 튜닝 하고 연주를 하고 있는지를 피드백하면서, 다시 한번 나의 음악을 발견하고 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스스로 나를 이야기 할 때, 나는 음악 애호가로서 오디오를 통하여 음악다운 음악을 듣고 싶은 열망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수준이기에 나의 관점은 지극히 주관적인 사항이다.
너절한 이야기는 나의 음에 대한 진솔한 고백이라기보다는 어설픈 변명이다. 그 정점에 다가서지 못하는 사람의 넋두리이다. 주위 고수들의 격조 있고 단아하면서도 품위를 유지하는 그 분들의 인격을 닮아진 연주를 보고 배워왔고, 아직도 나는 진행형이다.
그래서 닮아가려고 노력을 하였고, 그 분들에게 받은 고마움을 어쩌면 지금 내가 걸어왔던 길을 걸으려는 사람에게 작은 틈이 되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은 것도 사실이다. 아무튼 이와 같은 생각도 나의 욕심이라는 것을 깨닫는 아침이다.
뭘 제대로 알고서 쓰는 글도 아니면서 뽐내듯 자랑하는 글도 언뜻 뒤돌아보니 보인다. 부끄럽다. 아직 나의 피는 뜨겁고, 성숙되지 못한 교만함이 쓴 뿌리처럼 자라나 있음을 발견하였다.
음악처럼 아름답게 자연스럽게 따스한 향기를 가지는 삶을 정녕 살수는 없을까? 음악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이 정녕 음악이 아름답고 어쩌며 하면서, 그 고귀한 음악의 혼에 대한 이야기를 거론하고 감상을 잘하고 있다고 떳떳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참 어렵다. 어느 누가 죄가 없다고 다른 이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하는 성경 속의 사건처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자기 것으로 해석하여 일방적으로 다른 이들을 단죄를 하듯 돌을 던지는 일은 자기 양심과 인격에 돌을 던지는 우매한 일이다.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오디오와의 관계를 떠나서 생각을 할 수 없다. 물고기가 어찌 물을 떠나 살수 있을까? 오디오와 음악은 필수불가결의 조건이기에 상대적으로 소망하는 목표를 두고 접근하는 작업은 당연한 일이다.
오디오의 진화를 위한 복잡 과정, 즉 회로가 어쩌고 진공관이 특성, 선재가 어쩌고 등 장황한 조건들이 우선하여도, 한마디로 음악은 자연스럽고, 듣기에 편하게 향긋한 바람결이 얼굴을 스쳐가듯 흐르듯 하면서 따스한 정감을 담아서 연주되어져야지 그렇지 않으면 피곤함을 유발하는 소리 일뿐이다.
음악은 삶이고 즐거운 취미의 영역에서 살아 움직이는 미학이다. 음악과 오디오를 향유하는 일상이, 자본력의 자랑이 될 수 없고, 어설픈 지식의 자랑이 되어서는 더욱 아니 된다.
강한 생명력 있는 음악을 호흡을 하듯 음악을 사랑하는 것은 맑은 영혼이 선율 속에 담아진 그리움과 추억, 사랑의 그림자를 느끼고 바라보는 것이다. 인생을 관조하듯 살아가며 남은 여백에 인격과, 철학, 예술, 낭만의 풍경화 그려보는 일이다.
나의 오디오의 재생 音에 대한 나의 기준이라는 제목으로 어설픈 글을 쓰면서 정말 제대로 튜닝 하고 연주를 하고 있는지를 피드백하면서, 다시 한번 나의 음악을 발견하고 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스스로 나를 이야기 할 때, 나는 음악 애호가로서 오디오를 통하여 음악다운 음악을 듣고 싶은 열망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수준이기에 나의 관점은 지극히 주관적인 사항이다.
너절한 이야기는 나의 음에 대한 진솔한 고백이라기보다는 어설픈 변명이다. 그 정점에 다가서지 못하는 사람의 넋두리이다. 주위 고수들의 격조 있고 단아하면서도 품위를 유지하는 그 분들의 인격을 닮아진 연주를 보고 배워왔고, 아직도 나는 진행형이다.
그래서 닮아가려고 노력을 하였고, 그 분들에게 받은 고마움을 어쩌면 지금 내가 걸어왔던 길을 걸으려는 사람에게 작은 틈이 되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은 것도 사실이다. 아무튼 이와 같은 생각도 나의 욕심이라는 것을 깨닫는 아침이다.
뭘 제대로 알고서 쓰는 글도 아니면서 뽐내듯 자랑하는 글도 언뜻 뒤돌아보니 보인다. 부끄럽다. 아직 나의 피는 뜨겁고, 성숙되지 못한 교만함이 쓴 뿌리처럼 자라나 있음을 발견하였다.
음악처럼 아름답게 자연스럽게 따스한 향기를 가지는 삶을 정녕 살수는 없을까? 음악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이 정녕 음악이 아름답고 어쩌며 하면서, 그 고귀한 음악의 혼에 대한 이야기를 거론하고 감상을 잘하고 있다고 떳떳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참 어렵다. 어느 누가 죄가 없다고 다른 이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하는 성경 속의 사건처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자기 것으로 해석하여 일방적으로 다른 이들을 단죄를 하듯 돌을 던지는 일은 자기 양심과 인격에 돌을 던지는 우매한 일이다.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오디오와의 관계를 떠나서 생각을 할 수 없다. 물고기가 어찌 물을 떠나 살수 있을까? 오디오와 음악은 필수불가결의 조건이기에 상대적으로 소망하는 목표를 두고 접근하는 작업은 당연한 일이다.
오디오의 진화를 위한 복잡 과정, 즉 회로가 어쩌고 진공관이 특성, 선재가 어쩌고 등 장황한 조건들이 우선하여도, 한마디로 음악은 자연스럽고, 듣기에 편하게 향긋한 바람결이 얼굴을 스쳐가듯 흐르듯 하면서 따스한 정감을 담아서 연주되어져야지 그렇지 않으면 피곤함을 유발하는 소리 일뿐이다.
음악은 삶이고 즐거운 취미의 영역에서 살아 움직이는 미학이다. 음악과 오디오를 향유하는 일상이, 자본력의 자랑이 될 수 없고, 어설픈 지식의 자랑이 되어서는 더욱 아니 된다.
강한 생명력 있는 음악을 호흡을 하듯 음악을 사랑하는 것은 맑은 영혼이 선율 속에 담아진 그리움과 추억, 사랑의 그림자를 느끼고 바라보는 것이다. 인생을 관조하듯 살아가며 남은 여백에 인격과, 철학, 예술, 낭만의 풍경화 그려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