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 음악에 있어서 악기의 음색에 대한 단상
오디오로 음반에 담긴 음악이 재생되어질 때 흔히 소리가 좋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 소리만 좋다는 뜻이다. 그러나 음악이 좋다고 하는 것은 연주력이 좋다는 의미라고 말하고 싶다.
음악의 감상에 있어서, 오디오를 통한 재생 음악이든지, 실연에 있어서 연주를 감상할 때든지 각 악기들이 들려주는 오묘한 음색이 발현된다.
각 악기에게 숨어진 독특하고 아름다운 음색이 얼마나 감성적으로, 또는 깊이 있는 연주, 기교가 넘치는 연주로, 상대적으로 수용되고 접근하는 상태에 따라 음색에 대한 취향이 드러난다.
아무튼 깊이 있는 오묘한 음색으로 표현되는 악기들이 연주되어져, 감성을 사로잡는 미묘한 감동이 밀려올 때 우리는 깊은 영혼의 떨림에서 불러오는 음악을 듣게 된다.
마치 조용한 푸른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에 닫혀진 온몸의 모든 것들을 열어두고 받아들이는 무아의 상태, 즉 편안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담긴 음반에서 각 악기들이 들려주는 진정한 음색을 탐미하게 된다.
음악을 굳이 이렇게 분석적이면서 감각적으로 굳이 듣지 않아도 된다. 그냥 흐르는 선율 속에 몸과 마음을 맡겨두고 듣는 방법도 있다. 어느 것이 결코 좋다, 또는 나쁘다고 할 수도 없으며 비교할 필요도 없다.
단지 여기에서 분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각 악기가 갖고 있는 고유한 음색이 제대로 들려오는가 하는 문제를 말하고 싶을 뿐이다.
우린 바이올린의 음색을 좋아한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거의 오디오를 통하여 음악을 감상하는 과정에서 한번쯤 빠져 들어보는 선율이다.
그런데 문제는 가장 좋아하는 연주자의 바이올린 연주라고 하면서 감상하는 바이올린 음색이 객관적으로 평할 때, 어느 경우에는 그 연주자의 바이올린의 음색은 비올라에 가까운 또는 첼로소리에 가깝게 재생되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먹을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연주자의 바이올린 음색이 너무 좋아서 즐겨듣습니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바이올린 음악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 참 난감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듣는 자가 그 연주가 훌륭한 연주라고 이미 정의 내려놓고, 그 연주의 결과를 사실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경우에는 어떠한 말이 필요 없다. 그대로 만족하며 감상한다고 한들 누가 뭐라고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러므로 악기의 고유 음색이라는 문제는 우리를 매우 혼란스럽게 할 수 있는 첨예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실연 음악에 대한 갈급, 또는 실연보다는 오디오 재생을 더욱 좋아한다는 사유로 음악의 세계를 향유한다고 하더라도, 각 악기가 갖고 있는 고유 음색을 인식하면서 듣는 기본적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물론 연주하는 바이올린이 비올라, 또는 첼로인지 관계없이 귀에 듣기 좋으면 되었지 굳이 그걸 따지면서 감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듣는다는 전제로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에게 이 문제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조건임을 다시 한번 언급하고 싶다.
각 악기들이 갖고 있는 고유한 성질, 또는 배음이 만들어 내는 선율을 인지하며 들을 때 좀더 그 음악의 깊이에 빠져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섬세한 음의 알갱이들이 숨결처럼 포근하게 재생되어지는 상황에서 오감에 전달되어 오는 음악적 낭만은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는 위대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특별한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오디오로 음반에 담긴 음악이 재생되어질 때 흔히 소리가 좋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 소리만 좋다는 뜻이다. 그러나 음악이 좋다고 하는 것은 연주력이 좋다는 의미라고 말하고 싶다.
음악의 감상에 있어서, 오디오를 통한 재생 음악이든지, 실연에 있어서 연주를 감상할 때든지 각 악기들이 들려주는 오묘한 음색이 발현된다.
각 악기에게 숨어진 독특하고 아름다운 음색이 얼마나 감성적으로, 또는 깊이 있는 연주, 기교가 넘치는 연주로, 상대적으로 수용되고 접근하는 상태에 따라 음색에 대한 취향이 드러난다.
아무튼 깊이 있는 오묘한 음색으로 표현되는 악기들이 연주되어져, 감성을 사로잡는 미묘한 감동이 밀려올 때 우리는 깊은 영혼의 떨림에서 불러오는 음악을 듣게 된다.
마치 조용한 푸른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에 닫혀진 온몸의 모든 것들을 열어두고 받아들이는 무아의 상태, 즉 편안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담긴 음반에서 각 악기들이 들려주는 진정한 음색을 탐미하게 된다.
음악을 굳이 이렇게 분석적이면서 감각적으로 굳이 듣지 않아도 된다. 그냥 흐르는 선율 속에 몸과 마음을 맡겨두고 듣는 방법도 있다. 어느 것이 결코 좋다, 또는 나쁘다고 할 수도 없으며 비교할 필요도 없다.
단지 여기에서 분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각 악기가 갖고 있는 고유한 음색이 제대로 들려오는가 하는 문제를 말하고 싶을 뿐이다.
우린 바이올린의 음색을 좋아한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거의 오디오를 통하여 음악을 감상하는 과정에서 한번쯤 빠져 들어보는 선율이다.
그런데 문제는 가장 좋아하는 연주자의 바이올린 연주라고 하면서 감상하는 바이올린 음색이 객관적으로 평할 때, 어느 경우에는 그 연주자의 바이올린의 음색은 비올라에 가까운 또는 첼로소리에 가깝게 재생되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먹을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연주자의 바이올린 음색이 너무 좋아서 즐겨듣습니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바이올린 음악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 참 난감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듣는 자가 그 연주가 훌륭한 연주라고 이미 정의 내려놓고, 그 연주의 결과를 사실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경우에는 어떠한 말이 필요 없다. 그대로 만족하며 감상한다고 한들 누가 뭐라고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러므로 악기의 고유 음색이라는 문제는 우리를 매우 혼란스럽게 할 수 있는 첨예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실연 음악에 대한 갈급, 또는 실연보다는 오디오 재생을 더욱 좋아한다는 사유로 음악의 세계를 향유한다고 하더라도, 각 악기가 갖고 있는 고유 음색을 인식하면서 듣는 기본적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물론 연주하는 바이올린이 비올라, 또는 첼로인지 관계없이 귀에 듣기 좋으면 되었지 굳이 그걸 따지면서 감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듣는다는 전제로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에게 이 문제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조건임을 다시 한번 언급하고 싶다.
각 악기들이 갖고 있는 고유한 성질, 또는 배음이 만들어 내는 선율을 인지하며 들을 때 좀더 그 음악의 깊이에 빠져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섬세한 음의 알갱이들이 숨결처럼 포근하게 재생되어지는 상황에서 오감에 전달되어 오는 음악적 낭만은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는 위대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특별한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