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각성을 경험하고

by 윤영진 posted Jun 1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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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길상사의 덕현 주지스님과 함께 두 분의 평소 좋아하는 스님들,
그리고 몇 분의 문화계 인사들과 저녁식사와 곡차(술)을 함께 했습니다.

(덕현 스님은 공양도 절 내에서만 하시고
곡차는 안 드십니다.
그러나 다른 스님들이 곡차 드시는 것에 대해서
아무 말씀도 않습니다.)


근래에 제가 법정스님을 추모하는 행사를 기획해서
두 번에 걸쳐서 실행했고,
어제는 그 두 번째 행사를 마치는 날이라
조촐하게 행사 마치는 것을 돌아보는 자리를
함께 한 것입니다.

법정 스님에 대한 회고에서 시작해서
제 일생의 멘토셨던 강원룡 목사님,
그리고 직접 교유는 못했지만 존경하는 김수환 추기경님에 대한 회고....


자식 교육 문제부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까지
두서없지만 해량 너른 화제로
기분 좋은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덕현 스님의 가슴 울리는 말씀 들으며
마음이 기울어서
근 10년 간 가슴에 묻고 풀지못하던
화두 하나를 여쭈었습니다.
(저는 무신론자로서 불교신도도 아닙니다만....)


스님께서는 "직답"이 아닌
메타포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순간 뇌전이 하늘에서 제 머리를 관통해서
땅(어스)로 내리 꽂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생전 처음 "각성"을 경험한 것입니다.

아무리 부둥켜안고 고민하고 번민해도 풀지 못했던
마음 속 숙제 하나가
한 순간에 뻥 뚫혀버린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의자에서 벗어나
바닥에 무릎을 꿇고 감사의 절을 올렸습니다.


나이로만 따지자면 동생뻘이신 분이지만,
그 순간 제게는 스승이셨습니다.

스님도 제게 고맙다고 했습니다.

수련을 하다 보면,
스스로 각성하는 것 보다는
남의 각성을 돕는 것이 더 공덕을 쌓는 것인데,
스님께 그런 공덕을 쌓게 해 준 것을
제게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옆의 분들이 다들 놀라움을 표했습니다.

평소 종교에 대해 냉정하고 비판적이었던
제가 보인 언행이 신기해 보였다고 합니다.

주위 분들이 묻더군요.

"무엇을 물었고, 무엇에서 어떤 각성을 했냐?"

고......

저와 덕현 스님이 서로 마주 웃고....

제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깨우친 것을 그 순간 잊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니
세상이 바뀐 듯 합니다.

물론 세상은 그대로입니다.
제가 바뀌었습니다.


고민을 처절하게 하면 각성도 일어난다는 걸 알았습니다.


물론 좋은 구루의 도움이 있으면
가능성은 더 높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