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도 더 지난 옛날에,
'집시의 시간'이란 영화를 봤다가 그 고단하고 희망없는 삶들에 절로 눈물이
났던 적이 있다.
술을 마시던 시절이었으므로,
스스로 감성이 풍부하고 지나치게 인간적이라는 자기착각이 심해서,
영화에 감동하고 제 눈물에 스스로 감동했었다.
그 영화의 감독이 세르비아(그땐 유고슬라비아)의 에밀 쿠스트리차인데,
이후 그 감독의 영화는 일부러 찾아보게 되었다.
이번에 그 감독이 수년 간 마라도나를 취재해서 '축구의 신 마라도나'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내놓았던 모양이다.
월드컵 기간 동안 아르헨티나 경기를 볼 때면, 감독이 되어 감독할 생각은 없고
운동장 금가를 서성이며 자기에게 축구공이 오기만을 기다리다가, 공이 오면
어김없이 녹슬지 않은 재간을 보여주는 마라도나를 보면서, 마누라와 즐거웠다.
영화는 월드컵이 끝난 뒤 보게 되었다.
마라도나는 미국을 혐오하고 저주하며 쿠바의 카스트로를 찬양하고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와 친구먹는 반미혁명가였다.
왼팔에는 카스트로를, 오른팔에는 체게바라를 문신하고서, FTAA(자유무역지대협정)
반대집회를 주도하고, 미국의 금융제국주의를, 미국의 대통령을 엿먹였다.
정치할 생각이 있는 거냐는 질문에,
정치하는 놈들은 하나같이 민중을 등쳐먹는 놈들이다. 유일하게 민중을 등쳐먹지
않은 정치인이 카스트로다. 그래서 그를 존경한다.
는 식의 대답을 했다.
1986년 월드컵 우승 후, 거의 동시에 미국과 쿠바에서 상을 주겠다는 제안이 왔는데,
미국 쪽엔 팔뚝을 손바닥으로 쳐 엿먹어라는 시늉을 보이고,
쿠바 쪽에서 주는 상을 받았다고 웃기도 했다.
마약에 빠졌던 세월을, 딸들이 자라나는 것을 보지못한 것이 가장 후회스럽다는 식으로
표현하면서 회한의 눈물을 보이기도 했고,
가난했던 옛 시절이 지금의 자기를 존재하게 하는 원천이라고도 했다.
영화를 보면서, 마라도나와 펠레가 왜 원수지간처럼 으르렁거리는지 알게 되었다.
가는 길이 정반대나 다름없는 두 사람이었던 것이다.
굳이 두 사람에 대한 호불호를 가려 인간에 대한 취향을 드러내자고 한다면,
당연히 마라도나쪽이 좋다.
진공관을 놓고 철저히 개인적인 주관을 마라도나 식으로 말하자면,
소리를 전부 표현하지 못하는 기형적인 음률로 특별한 무엇이라도 되는 것처럼
부르조아지 진공관 행세를 하는 직열삼극관들은 엿 먹으시오.
들을수록 기분 나쁜 화학조미료 소리를 달콤한 무엇이라도 되는 양 뿌려대는
부조아지 탄노이도 엿 먹으시오.
아울러 숱한 미신과 처절한 유행들, 그것들에게 온갖 미사여구와 올바르고 건전하며
도덕적인 언어들로 분칠하는 포장을 씌우는 의도들에 부디 저주가 있기를.....
ㅎㅎㅎㅎㅎ....
이런 것이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