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적인가 입체적인가,
경박한가 점잖은가,
밋밋한가 너울대는가,
평면적인 소리는,
내가 왜 이런 음악을 듣고 앉았는가 싶은 회의를 불러 일으키고,
경박한 소리는,
들으면 들을수록 듣기 전 보다 오히려 스트레스가 차곡차곡 쌓이게 하고,
밋밋한 소리는,
자포자기와 달관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하여 가치관의 혼란을 겪게 합니다.
평면적인 소리는 혼과 스피커에서 직접 소리가 들려오고,
입체적인 소리는 혼과 스피커에서 소리가 안납니다.
경박한 소리는 좀 들어달라고 귀찮게 엉겨붙고 달려들고,
점잖은 소리는 나는 여기서 노래할 테니까 너는 듣든지말든지 마음대로 해라, 합니다.
밋밋한 소리는, 무슨무슨 악기 소리구나 알게 하는 정도지만,
너울대는 소리는 무슨무슨 악기를 연주하는구나, 하는 감흥을 줍니다.
입체적인 소리는 가만히 듣다보면 끊임없이 솟는 샘물같은 잔잔한 기쁨을 주고,
점잖은 소리는 들으면 들을수록 새록새록한 정감과 위안을 줍니다.
너울대는 소리는 오디오에 집착하는 것이 음악을 듣기 위한 것이라는 근본적인
시작에 천착하게 합니다.
좋은 소리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아닌 소리는 점점 더 분명해집니다.
좋은 소리를 추구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입니다.
아닌 소리를 치우는 것이 옳은 길일 것입니다.
즉, 아닌 소리가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 소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입체적인 소리가 무엇인지 몰랐으나, 평면적인 소리를 혐오하다 보니 나름의 입체를
얻었습니다.
점잖은 소리가 무엇인지 몰랐으나, 경박한 소리를 저주하다 보니 나름의 점잖은 소리를
얻었습니다.
너울대는 소리가 무엇인지 몰랐으나, 밋밋한 소리에 분노하다 보니 나름의 너울대는
소리를 얻었습니다.
그럼에도 이게 좋은 소린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은 옳은 일을 할 수 없고 좋은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아닌 일이나 나쁜 일을 절제하고 정리하고 치우는 것은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일은 모든 게 그와 같을 것입니다.
오디오 따위랍시고 거기엔들 무슨 예외가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