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소전 게시판에 글쓰기는 거의 안했지만 가끔 들러서 다른 분들의 글을 읽기도 하며 늘 관심을 갖고 전에 알던 분들의 근황은 살펴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가끔 글로라도 여러분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자 노력하겠습니다.
얼마 전 존경하는 예병수선생님의 글과 관련해서 뜬금없는 댓글을 올려놓고 보니,
결과적으로 예선생님의 본래 의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쓴 점이 많아서
\"오랜만에 감도 못잡고 엉뚱한 댓글을 올렸구나!\"라고 후회 섞인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댓글의 부실한 점을 재정리하는 글을 다시 올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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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듣나, 안 들리나?\"
인간의 가청 대역이라고 지칭되는 20-20,000Hz 의 주파수 대역을 과연 오디오 시스템이 평탄하게 재생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 그리고 인간이 과연 그런 대역을 충실히 들을 수 있느냐의 문제는 복합적 의제입니다.
안과나 안경점에 있는 시력 검사표를 예로 들겠습니다. 만약 이 세상의 모든 시력 검사표의 가시적 기준이 표준화되어 있다면, 그것을 통해서 측정된 인간의 시력 역시 표준화가 가능합니다.
몽고에 사는 유목민들은 시력이 3.0-5.0에 이른다고 하고, 나이가 들어도 시력이 덜 낮아진다고 합니다. 청력도 마찬가지라 타고나길 좋게 태어나서 꾸준히 청각신경을 훼손 않고 훈련한 사람은 나이 들어서도 아주 예민하고 폭 넓은 청력을 유지하는 케이스도 있습니다.
어쨌든 보편적으로 인간의 청력은 나이 들수록 낮아지고, 이에 반해서 음악 을 들을 때의 “축적되고 훈련된 미학적 감성”은 증가되는 크로스 변화가 발생합니다.
지적 능력과도 같아서, 나이 들수록 기억력은 낮아지는데, 종합적 상황분석력은 증가하는 것과 동질입니다.
그런데, 안과나 안경점의 시력 측정판만 해도 그 편차나 심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검은 색 숫자나 기호와 배경 흰색과의 브라이트니스가 얼마나 명확한지, 주변의 밝기가 어떤지, 거리의 차이 등에 따라 편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곳에서 측정하면 0.5이던 시력이 어떤 곳에서는 0.7로 측정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오디오 시스템의 편차는 시력 측정판보다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훨씬 더 크다는 점입니다.
1) NFB 안 걸고 제작된 진공관 증폭기와, 주파수 대역 특성이 본래 협대역인 빈티지 스피커로 재생했을 때의 초고역, 초저역 인지능력
2) NFB를 걸고 대역 특성이 평탄하게 제작된 TR증폭기에, 초고역과 초저역까지 커버하도록 제작된 저능률 스피커로 재생했을 때의 인지능력
3) 위 2)에 더해, 이퀄라이저를 이용해서, 플레처 & 멘슨 곡선에 근거해 인간의 청력이 둔감한 고역과 저역을 인위적으로 부스트해서 재생했을 때의 인지능력
당연히 1)보다는 2), 3)으로 갈수록 초고역과 초저역이 잘 들립니다.
즉, 1), 2), 3)의 상대적 차이는 청각 능력과 관계없이 구분이 된다는 겁니다. 그건 나이와 관계없이 구분됩니다.
다만 나이가 먹어서 초고역과 초저역이 잘 안 들리는 사람들과 젊어서 전대역이 잘 들리는 사람들 간에 “절대적 차이”가 있게 마련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가청 대역이 좁아질 때 이에 대응하는 오디오 애호가들의 반응은 상당히 차이를 보인다는 점입니다.
1) 한 부류는, 잘 못 듣는 대역의 재생능력은 아예 포기하고, 그에 상대적으로 아직 잘 들리는 중역에서의 음감이나 음질이 좋은 빈티지 계열의 기기를 애청하는 쪽입니다.
2) 반대쪽은, 멀티 앰핑이나 이퀄라이저 등을 활용해서 귀가 둔감해진 초고역과 초저역을 최대한 살리거나 더 나아가 부스트해서 대역의 평탄성을 인위적 보상을 통해 듣는 쪽입니다.
물론 위에 예를 든 극단적인 예보다는 둘 사이의 중간쯤에서 절충적인 기호를 가진 사람이 가장 많습니다.
이 어느 쪽이 옳거나 그르다고 차이를 구분 지을 수는 없습니다. 그냥 개개인의 기호와 선택일 뿐입니다.
제가 그동안 경험한 오디오 애호가들은,
주파수 대역이 상대적으로 좁은데 음질은 우수한 케이스와 주파수 대역은 충실한데도 음질은 상대적으로 미흡한 케이스, 이 두 가지 중에서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면 광대역 주파수보다는 고음질 쪽을 훨씬 많이 선택합니다.
이는 다시 말해서 가청 대역을 충실히 커버하는 광대역 재생 능력이란, 종합적인 오디오 음질의 ‘중요 요소’이기는 하지만 ‘절대 요소’는 아니라고 보게 하는 점입니다.
(물론 재생 대역이 100-7,000Hz 정도의 극단적인 협대역까지 포함해서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음질을 전제로, (1) 20-20,000Hz(-3db)와 40-12,000Hz(-3db)의 차이와, (2) 20-12,000Hz(-3db)와 40-20,000Hz(-3db)의 차이를 구분하거나 선호도를 파악해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2)의 차이에 더 민감해 하고 싫어합니다.
즉, 대역 차이보다 대역의 밸런스가 더 중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고역만 많이 나거나 저역만 많이 나는 오디오는 듣기 싫어하지만, 초저역과 초고역이 덜 나와도 전체적인 밸런스가 좋은 오디오는 듣기 좋아합니다.
오디오기기를 제작하거나 선택해서 구매해 사용해 보면 쉬 알 수 있는 일이지만, “고음질과 광대역은 반비례적 함수관계”의 특징이 훨씬 큽니다.
우수한 풀 레인지로 들었을 때는 중역대 음질을 최상으로 하기 쉽고, 반대로 광대역으로 하면서 중역대의 음질을 풀 레인지만큼 좋게 하기는 어렵습니다.
드물게 이런 두 가지 상반된 가치를 동시에 구현하는 시스템도 있는데, 당연히 그런 시스템은 가격이 엄청나게 높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엄청나게 많은 돈을 지불해서 어려운 목표를 추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타협안을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선택이 어느 쪽이건 그걸 타인이 옳다 그르다고 간섭할 권리는 없습니다.
다 쓰고 보니, 하나도 새로울 것 없는 너무 상식적인 얘기만 늘어놨는데
취미로 자작을 하거나, 상업적으로 제작을 하는 사람들 외에
그냥 오디오를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기술적인 문제에 집착할 필요는
없고, 그래봐야 피곤하기만 하다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