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대충 편한 상태에서 입으로
아~
하고 길게 소리를 뽑습니다.
이때 몸의 어느 부분이 울리는지 자가 체크합니다.
세 가지로 나뉘게 되어 있습니다.
머리 쪽이 울리는 사람,
가슴 쪽이 울리는 사람,
복부 쪽이 울리는 사람.
그것이 가장 큰 분류입니다.
머리 쪽이 울리는 사람은 소리를 분석 위주로 듣습니다.
가슴 쪽이 울리는 사람은 소리를 감성 위주로 듣습니다.
복부 쪽이 울리는 사람은 소리를 질량 위주로 듣습니다.
그것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타고 태어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머리형이 감성과 질량을 모를 리 없으나, 감성도 분석하고 질량도 분석합니다.
가슴형이 분석과 질량을 모를 리 없으나, 감성적으로 분석하고 감성적으로 질량을 체크합니다.
복부형이 분석과 감성을 모를 리 없으나, 질량으로 분석하고 질량으로 감성을 느낍니다.
상대와 대화하다 보면 그의 목소리가 어느 쪽에서 울려나오는지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그는 반드시 그 울리는 곳 위주의 말을 쏟아낸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그것은 어김이 없습니다.
저는 가슴이 울리는 가슴형입니다.
그리고 속초의 두 분께선 복부가 울리는 복부형입니다.
대화가 길어지면 서로 엇갈릴 수 밖에 없습니다.
취향이라는 단어가 흔히 꺼내지는데 취향 하고는 무관한 얘기입니다.
취향은 대개 \'하나의 소리\'라고 하긴 곤란한 소리에 붙여지는 변명이자 회피용 언어에 불과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타고난 것이자 운명이며 숙명에 관한 것입니다.
크게 세 가지로 나누었으나, 그 아래 뿌리와 그 옆가지들은 사람 머릿수만큼 무수합니다.
소리도 엇갈리고, 소리에 대한 언어들도 엇갈립니다.
그러나 나를 알면 상대도 알게 되고 나를 이해하면 상대도 이해하게 됩니다.
비록 엇갈릴망정 그것이 제각각 당연함을 이미 알고 있으니 마음 상할 일 없고 다툴 일은 더더욱 없습니다.
전체를 다 파악하고 전체를 다 아는 양 행세하고 설치거나,
자기 것도 아닌 어디서 주워들었거나 남에게서 들은 얘기를 어떤 확고한 주장처럼 반복하거나,
너무나 많은 것을 알아 감당하기 어렵다는 듯이 포장질을 해대거나,
뭐나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폼을 잡고 그런 언어들만 골라가면서 주워섬기는 그런 행태들은
언제나 상대를 마음 상하게 하고 소통의 단절을 부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새까맣게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행태이기 때문입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란 말이 있습니다. 거기에 지음知音을 덧보태도 되겠습니다.
지피와 지기와 지음은 결국 같은 말입니다.
그러나 그 시작과 기준은 언제나 지기, 자기를 아는 것입니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