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를 실컷 자게 내버려뒀다가 아침 겸 점심 먹고 오후 1시 50분 느긋하게 출발,
아빠, 차 안에서 담배 피지 마.
개싴...
몇 개 안되는 휴게소마다 흡연을 위해서 잠시 들름.
5시 40분 속초 도착, 도착해서 전화. 마중,
그런데 30초가 아니라 3초인데.
아, 3초였습니까? 그런데 왜 나는 30초만 들으면 파악이 끝난다고 하신 걸로
기억을 하고 있지?
3초라니까. 3초면 된다니까.
음...3초.
입실, 간단한 인삿말이 오가고, 음악 재생.
저는 잠시 듣다가 말했습니다. 그 잠시가 3초는 넘었던 것 같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이건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흔해빠진 소리가 아닌가. 그야말로 전형적이고 지긋지긋한
일반적인 오디오 소리.
이런 소리로 그런 큰소리를 쳤단 말인가.
내가 속았구나.
제가 지라ㄹ발광을 한다고 생각했던지 그 소리의 주인께선 저를 붙잡아 자리에 앉히셨습니다.
그리고 그간의 이력을 하나하나 풀어놓았습니다.
약간의 당황한 기색, 완곡한 표정....이 분이 내 골방에서 그토록 자신만만하던 그 분이
맞긴 맞는가 의심하면서도 그 기색과 표정에서 진심으로 노력을 해온 사람만이 풍겨낼만한 진지함을 읽어내고 저는 가만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듣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도 중간중간 말했습니다.
나는 좋은 소리가 뭔지 모르며 내가 이르지 못한 소리에 대해선 아예 모릅니다.
하지만 지나쳐 온 소리는 다 압니다.
이 소리는 참...그렇습니다.
소리는 겉껍데기 뿐이며, 저역은 과잉입니다. 악기들 본연의 속질감을 느낄 수 없으니
연주자의 분위기와 음악의 뉘앙스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얼마만큼 노력을 해오셨는지 알아들었습니다만, 그 대가가 너무 나오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나이 지긋하신 분이 합세하셨습니다.
말씀하시는 요체는 박진감과 생동감입니다. 들어본 모든 소리가 죽은 소리라는 것.
추구하는 방향이 엇갈리는 것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서로 다른 한 부분만을 붙잡고 설왕설래하는 것은 피곤하며 서글퍼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들으면서 수긍하는 쪽으로 제가 방향을 바꿉니다.
두 분은 소리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신념을 가지신 분이란 걸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추구하는 목표 또한 선명하고 구체적입니다.
그 방법에 대해선 제가 뭐라 할 일이 아닙니다.
다만 두 분만큼 확고한 철학과 신념을 가지신 분이 오디오판에서 흔치 않은 것만은 분명합니다.
저는 그 점을 분명히 인정하고 시인합니다.
또 한 분이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찾고 있다. 우리를 만족시켜 줄 소리를.
우리가 우리 소리를 자랑하기 위해서 여기저기 다니겠는가. 우리를 만족시켜 줄 소리를 찾아다니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를 만족시켜 줄 소리를 내는 사람이 한 사람쯤은 있지 않겠는가, 희망의 끈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그런 사람과 그런 소리를 만나지 못했다.
그래도 그나마 이게 가장 나은 소리이기 때문에 이렇게 듣고 있는 것이다.
저녁식사로 이동합니다.
오랜 오디오생활에서 겪은 이런저런 에피소드들과 그와 연관된 독특한 인물들 얘기가 식탁에 함께 올려집니다.
주로 동호인들의 피눈물과 고혈을 빨아서 연명하는 나쁜 놈들 얘기...
음식을 씹을 땐 나쁜 놈들도 함께 씹어주는 일종의 쎈스...
식사를 마치고 나이 지긋하신 분의 tr로 이동합니다.
역시 박진감과 생동감, 그 소리와 그 분의 말씀은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러나 건조하고 메마른 tr 특유의 소리는 3초가 아니라 0.3초도 견디기 힘들게 합니다.
밖으로 나옵니다.
담배를 핍니다.
나이 지긋하신 분이 경고하듯 말씀하십니다.
담배 그렇게 자꾸 피면 함께 안 끼워줄 거야.
저는 웃으면서 대답합니다.
끼워주지 마십시오.^^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으나 그 다음이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저는 제가 만족하기 위해 오디오를 하지 다른 분을 만족시키기 위해 오디오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럴만한 능력이 되지 않는 까닭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제가 만족하는 소리에 함께 만족하는 분들하고만 소통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생각합니다.
오늘의 고민과 고통이 내일, 혹은 한 달 뒤, 혹은 일년 뒤에 그대로 이어지는 법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듯이 오늘의 확신과 신념이 그대로 쭉 이어질 까닭도 없습니다.
다만 사람이 타고난 유형...분명히 유형입니다....그 유형은 좀체 바뀌지 않습니다.
사람은 그렇게 전체의 한 부분 부분인 하나의 유형을 타고납니다. 결코 전체를 다 갖고 태어나지 못하며 그렇게 살아가지도 못합니다.
그렇게 인간은 다른 인간을 통해서만 서로서로 배울 수 있으며, 그 배움을 통해서 자기를 보고 자기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남을 보고 남을 알아가는 것은 부수적인 것으로써, 반드시 자기를 알고 이해하는 수준 만큼만 남도 알고 이해할 수 있을 뿐입니다.
소리와 음악은 그것을 상징처럼 잘 확인시켜줍니다.
완벽한 소리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소리와 음악 또한 하나의 유형을 지닐 뿐입니다.
속초의 두 분께서 추구하는 소리가 그 유형 안에서 하나의 작은 완성을 이룰 수 있길 기원해 봅니다.
* 어두워져서 애한테 바다구경을 시켜주지 못했으므로, 바닷가 근처에 방 잡아놓고 날 밝아지길 기다리며 pc방 와서 씁니다.
*여러 유형을 일생동안 쭉 돌아가며 경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열린 사람, 무엇이든 다 받아들이고 소화할 줄 알며, 누구에게든 무엇에게든 걸림이 없는 진정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할만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없으란 법 없고, 소리도 그런 소리는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만,
그런 사람이 어떤 사람이며 그런 소리가 뭔 소린지는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