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의 혼horn이란 것이 사람의 뱃속에서부터 입까지 연결된 사람의 음도를
그대로 본딴 것이란 얘기는 누구나 다 아는 얘기일 것입니다.
오래 전에 대한민국의 남자 성악가 김동규씨의 노래를 바로 지척에서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충격 먹었습니다.
김동규씨가 바로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노래소리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게 아니었습니다.
공간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김동규씨는 눈앞에 있는데, 소리는 그를 가리키고
있지 않았습니다. 공간이 노래를 부르고 김동규씨는 입만 뻥긋거리며 립싱크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전율했습니다.
저것이 진정한 혼horn이로구나!
그때 누가 저를 봤으면,
저 새끼, 난생 처음 문화생활 하는 모양이구나. 콧수염 노래실력에 흠뻑 젖었는걸,
했겠지만, 저는 김동규씨에게서 진짜 혼과 혼의 소리를 보고 듣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때의 경험 덕에 저는 사연이 어쨌건 제겐 김동규씨가 최고의 성악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긴 합니다.)
그 뒤,
직접적으로 혼에서 소리가 쏟아져나오는 건 엉터리라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혼이 자기 위치를 주장하는 소리는 아닌 소리, 덜된 소리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혼이 사람의 음도를 본딴 것이라면,
소리 또한 그래야 할 것이란 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정신나간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 = 오디오란 하나의 간단한 등식이 성립되었습니다.
혼 = 입, 음도,
우퍼, 인클로저 = 몸통, 육신
앰프 = 소화기관을 비롯한 오장육부, 에너지 기관
케이블 = 핏줄, 기경팔맥
소스 = 음식
아마 당시 노래하던 김동규씨의 컨디션은 매우 좋았을 것입니다.
오장육부가 원활하게 동작하고 몸에는 에너지가 충분했을 것입니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었을
것이며, 혈관의 흐름도 괜찮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뭇 청중들 앞에서 마음껏 제 성량을 뽐내면서 공간의 주인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디오 또한 혼 소리가 제대로 나오려면 모든 게 컨디션이 좋아 하나처럼 어울려야 할
것이란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선명해지는 게 있었습니다.
혼이 듣기 괴로운 소리를 낸다면 그것은 혼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
전체적으로 제 상태가 아닌 걸 혼이 가장 듣기 쉽게 드러내는 하나의 증상일 뿐이라는 것.
어디가 불편하거나 마땅치 않은 애가 너도 같이 괴롭자고 마구 울어대듯.
애 입을 막거나 사탕을 물리거나 어르고 달래거나 하는 건 미봉책일 뿐이듯
혼을 갖고 어떻게 해보겠다는 건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
애가 불편한 곳을 묻고 알아내서 그걸 해결해줘야 비로소 애가 다시 애처럼 보기 좋게
놀듯, 전반적으로 시스템 전체의 문제점을 찾아내 해결하지 않고서는 영원히
제대로 된 혼 소리를 들을 수 없으리란 것....기타 등등...
(나도 중략)...
여전히 김동규란 이름이 제가 경험하고 기억하는 가장 완벽한 오디오이자
그의 입이 가장 완벽한 혼입니다.
그리고 저는 511혼과 802D 드라이버로 그의 입과 노래소리를 흉내내고 있습니다.
멋진 혼, 굉장한 혼 많고, 멋진 드라이버, 굉장한 드라이버 많은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손에 걸리고 저하고 만나지게 된 놈들을 아끼고 사랑합니다.
오래된 물건들이라 그런지 몰라도 그 놈들에게도 제각각 품성이 있고, 따라서 저하고
연결되는 어떤 인연의 끈을 느끼는 까닭입니다.
억지나 무리를 하지 않는 것, 자기에게 맞게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덕목일지도 모릅니다.
* 안방 깨끗이 치우고 거기다가 22A 혼과 멋진 통에 필드우퍼 하나 넣고 그러면 딱일
것 같은데...라는 욕심이 고개를 쳐들고 있으나,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말 그대로 공연한 욕심이기 때문입니다.
*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갖지 않고 하지 않는 것도 자부가 될 수 있습니다.
가진 것, 하고 있는 것으로 이미 충분하다는 것을 내가 알고 남들도 알아줄 때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