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안방 텅텅 비워놓고 도대체 왜 골방에 처박혀 있는가?
으응?
요즘 자주 받은 질문입니다.
사실 특별히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실로 기어 나왔습니다.
오늘 오전 10시 약간 넘었을 때,
그냥, 괜히, 갑자기, 문득 하나하나 옮겨서 기어나왔습니다.
대충 늘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음악을 재생해 들어보았습니다.
저는 노래 잘하는 놈은 어떤 공간에 가도 잘한다고 뭐나 되는 것처럼 아는 체 한 바 있습니다.
그게 내 얘기를 내가 한 것인가, 남 얘기를 어디서 듣고 내가 아는 척 하는 것인가,
판가름나는 순간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남 얘기를 제것인양 하는 인간이 못됩니다.
그런 짓을 하면서 으쓱으쓱 살아갈만큼 삶의 의욕이나 집착이 왕성하질 못합니다.
골방에 있던 놈이 거실에 나왔다고 그 소리 어디 안갑니다.
골방에서 노래 잘하던 놈이 거실에 나와서 이상한 소릴 낸다면
그것은 골방에서도 사실은 노래를 이상하게 했다는 뜻 밖에 안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환경, 공간의 영향을 타는 소리들은 제 소리를 갖지 못했다는 뜻과 같은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노래 잘하는 놈은 어디 가서도 노래 잘합니다.
또한 못하는 놈은 어디 가서도 못하며,
이상하게 하는 놈은 어디 가서도 이상하게 합니다.
대충 늘어 놓아도 소리의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음정도 그대로고 공간의 변화로 인한 부분적인 부족이나 과잉 등의 들쭉날쭉 현상도 없습니다.
다만 같은 볼륨에서 골방보다 음량이 풍부해지고 스케일이 커졌습니다.
더 넓은 공간의 미덕입니다.
아파트 거실이 오디오엔 최악의 공간이라는 저간의 전문가스럽고 고수스런 속설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나오길 잘했구나.
앗, 여긴 열 사람이 앉아도 되겠는걸,
나도 이젠 좀 많은 사람 모아놓고 음악과 소리에 대해 썰을 푸는 고급스런 문화생활을 품위있게 영위할 수 있겠구나.
흡족해집니다.
품위라는 단어를 떠올리자
가운데 시꺼먼 텔레비전과 거기에 맞는 시꺼먼 장식장이 거슬립니다.
텔레비전은 일부 오디오인들이 환장하는 소위 \'특주품\'입니다.
LG 광시야각 패널을 갖다가 어느 중소기업에서 조립한 것인데, 상표를 붙이지 말아달라고 특별주문한 것입니다.
그러면 화질이 더 좋아진다는 얘길 어디서 들은 것 같기도 합니다.
텔레비전은 거의 안보고 살지만, 제가 입을 굳게 닫고 있으면 누구도 정체를 알 수 없을 특주품이라 갖다버리긴 뭐하니,
장식장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무-진짜 나무로 해야겠다고 결정합니다. 내일 당장. 시골에서 한가히 사는 사람의 특권입니다.
그 외에 할 건 없을 듯 합니다.
공간이 바뀌었다고 크게 애쓸 일이 없는 건,
앰프와 스피커의 조합이 이미 공간에서 소리를 내고 있었던 까닭입니다.
앰프와 스피커가 공간에서 자기만의 영역을 확보하면,
어떤 공간에서든 동화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