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나온지 좀 지나니 612통이 괜히 작아보이기 시작했습니다.
612통 위에 있던 811혼이 작아보여 511로 바꾼 건 골방에 처박혀 있을 때입니다.
그땐 612통에 대해선 어떤 불만이나 딴생각을 품지 않았습니다.
811혼이 작아보여 단지 아무 생각없이 511로 바꾼 것과는 달리
612통은 작아보인다는 생각이 교체의 전조이긴 했지만
조금은 구체적인 까닭으로 828과 교체되게 되었습니다.
화장실에서 오줌을 누고는 고추를 잡고 털다가,
문득 거울에 비치는 제 꼴을 보고,
개 ㅅ 끼...추하게 늙어가는구나, 싶은데,
우퍼 쪽도 혼 타입으로 된 걸 쓰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일어났고,
저는 그 생각에 어떤 저항력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에 몸서리쳤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폭풍 같은 추진력으로 828통을 구하고
미친 듯한 근면성과 성실성으로 내부흡음재를 정리하고 우퍼를 바꿔 달았습니다.
오늘 하루 사이, 오후 다섯 시부터 여덟시 사이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런 경우, 저는 제 능력에 스스로 많이 놀랍니다.
빌어먹을 능력...
음악을 들으면서 천천히 정리를 해봅니다.
통만 바뀌었을 뿐인데
불과 오전까지 듣던 소리에 비해 무대와 스케일이 넓어졌습니다.
넓어진 소리의 공간은 어디 있다가 나타난 건지 오히려 섬세함으로 채워집니다.
오전에 비해 중역대가 훨씬 더 쉽고 수월하고 여유만만하게 들려옵니다.
결과적으로 음악이 더욱 음악 같아지고, 저는 듣기에 더욱 편해집니다.
알텍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828통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들을 주워들은 것이 있습니다.
저하고는 상관없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골방잽이였으니 828통과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다만 다른 곳에서 들어본 828통에서 좋은 인상을 받은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퍼도 혼타입으로 된 통에 넣어서 들어보고 싶은 욕망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도 없었습니다.
828통이야말로 그 욕망을 채울 수 있는 가장 만만하면서도 가장 표준적인 통이었을 뿐입니다.
만듦새나 재질로 보아 국내에서 제작한 게 분명해 보이지만,
그런 건 제겐 중요하지 않습니다.
튼튼하고 정성스럽게 만든 흔적이 보이는 걸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지금 소리를 들으면서,
자꾸 한가지 의문만 듭니다.
커지면 무조건 좋은 것인가, 그런 것인가...
제품이 되고 사용법이 적절하다면 그런 것 같습니다. 아직까진...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빈티지라 할만한 품질의 트랜스포머 같은 것...
그런데 함께 사는 녀석이 한마디 합니다.
아빠, 이거 오바질 아냐? 스피커가 너무 크잖아. 집이 답답해졌어.
무조건 좋은 건 아닌 모양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다행입니다.